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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아이 vs 멋진 아이

아이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예쁘다

by 다정한 시옷

교사로 살며 수많은 아이를 만난다. 그중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아이들이 있다. 두 해 전에 만난 ㄱ이 그런 아이 중 하나다.

내 수업은 아니었고, 영어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다.

교과서 본문을 아이들이 스스로 해석하고 분석해서 선생님처럼 친구들을 가르치는 발표 수업이었다고 한다. 문은 미국 소방관의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다룬 신문기사였다.

대부분은 문장을 해석하고 문법 요소를 분석하는데 집중한다. 그런데 ㄱ 은 발표를 마무리하며 아이들의 호기심을 맥시멈으로 자극하는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이 이야기가 실화인지 궁금하시죠? 그래서 제가 찾아봤습니다. 실제 있었던 사건이고, 소방관과 직접 인터뷰도 해보았습니다. "

그 뒤는 내내 놀라움의 연속었다.

화면 속에서 ㄱ과 미국의 소방관이 줌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화면 아래에 자막이 지나갔다.

화면을 보면서도 모두 믿을 수 없는 상황, 페이크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다.

어떻게 했냐고 선생님이 물었다.

ㄱ은, 발표를 준비하며 어떻게 하면 더 흥미로운 수업이 될지 고민했다고 한다. 구글과 인스타를 검색해 기사의 주인공을 찾아냈고, 인스타 dm을 보내 인터뷰를 요청했다. 방관은 먼 나라의 교과서에 자신의 이야기가 실렸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흥미로워했고,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오히려 자신이 영광이라 말했다고 한다. 질문을 영어로 준비했고, 시차를 맞추기 위해 새벽까지 깨어 있었으며, 자막을 넣고 영상 편집까지 했다. 그런 기술은 대체 언제 배운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유니콘이 할 만한 아이였다.

정말 대단하다고, 이야기를 전해 들은 교무실 선생님마다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ㄱ의 발표를 듣던 같은 반 친구 ㅅ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ㄱ이 우리 반 친구라서 너무 자랑스러워요!"

그 상황에서 마냥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마음이 들만도 한데, ㅅ은 '자랑스럽다'는 단어를 정확하게 알고 적절한 타이밍에 썼다.

ㄱ은 대단하고, ㅅ은 멋지다.

아니,

ㅅ은 대단하고, ㄱ은 멋지다 말해도 다.

어떤 수사가 붙느냐보다 중요한 것,

두 아이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예쁘다는 사실이다.


많은 육자들이 내 아이가 ㄱ과 같기를 바란다. 누가 시키거나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주제를 설정하고 탐구하는, 자기 주도가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아이.

그런데 ㅅ과 같은 아이도 있다.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지만, 타인의 성과 진심으로 존중할 줄 알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부심을 갖는 아이.

나 역시 내 아이가 ㄱ과 ㅅ을 닮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다. '욕심'이라 표현한 이유는, 그렇게 닮는 일이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이다.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오해하지 마시라. 절대 내 아이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아이들의 대단함이나 멋짐은 언제 어떤 자리에서, 어떤 얼굴과 목소리로 드러날지 모른다. 백 명의 아이가 있다면 백 명의 다른 멋짐이 있다. 내가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다른 누군가는 분명히 알아볼 것이다.

설령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멋짐은 여전히 존재한다.


오늘도 나는 발견했지만, 한 명 한 명 다 글로 남기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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