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가 만능은 아니지만, 한 사람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틀이 될 때가 많다. 하지만 '우울해서 빵 샀어' 테스트처럼 단순한 구분으로 재미만 줄 때가 대부분이라 조금 아쉽긴 하다. 열두 살과 아홉살의 어린이들은 종잡을 수가 없는 패턴이라 단순 구분조차 어렵지만, 구분하고 난 뒤가 더 중요한 법인데, 그에 도움 되는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이때까지 열두살이는 나와 잘 통하는 편이라(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들 의견은 장담하지 않겠다!) mbti가 크게 궁금하지 않았지만, 아홉살이는 미치게 알고 싶었다.
그만큼 둘이 달랐다.
최근에 내가 열두살이에게 여러 번 긁혔다.
(어쩌면 잘 통하는 사이가 아닌 게 아닌가, 앞에 쓴 문장을 지워야 하나 잠깐 고민이 된다. 아무튼) 주변 선생님들께 나의 걱정과 고민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열두살이는 t고, 아홉살이는 f란 사실에 확신이 섰다. 게다가 성향 다른 두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감이 잡혀서 더욱 속 시원하다.
긁힘의 시작은 지난봄 운동회였다.
운동회에 갔더니 학부모와 함께하는 종목이 몇 있었다. 어떤 운동을 시킬지 몰라서, 혹시나 나의 허리 컨디션에 나쁠까 봐 몸을 사렸다.
그날 집에 와서 열두살이가 말하길,
엄마, 아무것도 안 할 거면 내년엔 차라리 오지 마.
정말 정색을 하고 저렇게 말했다. 나중에 보니 일기장에도 같은 말을 써놓아서 안 그래도 미안한 마음을 복습까지 했다.
이후에도 여러 번, 워킹맘이자 건강이 온전치 못한 엄마로서 죄책감이 슬금슬금 올라오는 장면들이 서너 번 쌓였다.
교무실 샘들과 스몰토크를 하다가 그동안의 사연을 풀었고, 열두살이에겐 미안하지만 운동회날의 일기를 보여주며(찍어둔 사진이 있었..)
나의 불편했던 마음을 맘껏 호소했다.
일기를 곰곰이 보신 선생님들이 각각 다른 해석들을 해주셨는데, 종합해 보면 나로선 아주 도끼 같은 깨달음이었다.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샘 아들이 잘하고 싶은 욕심도 많고 인정도 받아야 하고, 자기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잘해야 한다는 욕심이 있네. 그리고 엄마가 아주 극 f인데, 아들이 아주 t야, t. 운동회를 왔으면 운동을 해야지 왜 안 하냐고, 안 할 거면 오지 말란 거지, 그 말이네! "
아. 그러니까 그동안 내가 미안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혼자 북 치고 장구치 고였다. 아들은 운동회든 공개수업이든 엄마가 와도 되고 안 와도 되고. 왔으면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가셔라, 그게 전부인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애정과 관심을 연결시켜 해석한 것이다.
내가 열두살이와 잘 통한다 여긴 이유도 깨달았는데,
말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데 강점이 있는 내 육아방식이 사고형(T) 성향의 아들과 잘 맞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아홉살이가 상대적으로 소통이 어려울 수밖에, 감정형(F)인 아이에게 자꾸 말로 설명했으니 말이다.
챗gpt에게 물어봤다.
**T형(사고형)**은 세상을 논리적 구조와 규칙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역할놀이의 ‘시스템’이나 ‘규칙’**에 흥미를 느낍니다.
예를 들어, 경찰-도둑, 의사-환자 같은 놀이에서 ‘역할에 따른 규칙’이 있고, ‘사건 해결’의 구조가 있죠. 이런 질서 있는 시나리오는 T형에게 만족감을 줍니다.
**F형(감정형)**은 사람과 관계, 정서의 흐름에 민감합니다.
역할놀이는 감정의 ‘진짜’ 교류보다는 ‘가짜’ 상황을 전제로 하죠. F형 아이에게는 “진짜 내가 아닌 역할을 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거나 감정적으로 몰입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들들의 의견 없이 챗gpt의 해석만으로 어디까지 신뢰할 만한 진실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 느끼긴 했다. 아홉살이는 역할놀이를 그렇~~~ 게 어색해했다. 엄마가 엄마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상황을 싫어했다.(일곱살이도 f인가 보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두 아들들을 어떻게 다르게 대해야 하는지도 이제 알겠다.
열두살이(T형)는 자기가 왜 짜증이 나는지 알고 있고, 짜증을 내면 안 된다는 것도 다 안다. 이럴 때 어른이 구구절절 잘못을 지적하면 더 짜증 난다!
그럴 땐, 혼자 어찌하지 못하는 감정을 일단 도닥여준다.
그리고 차분해졌을 때 문제 상황의 해결책을 같이 찾아가면 좋다.
아홉살이(F형)는 한번 부정적 생각으로 감정이 흘러넘치기 시작하면, 멈추지를 못하고 빠져든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자기는 축구를 못해서 망했다며 갑자기 운 적도 있다.
그럴 땐, 울게 내버려 두거나 어설픈 공감은 안 하는 게 낫다.
감정에서 빠져나오게 눈물 닦게 하고, 세수하라 하고, 이렇게 우는 건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해줘야 한다. 방법을 같이 찾아볼 테니 우선 그치라고 해야 한다.
차분해지면 그때부터 스스로 생각한다. 축구공 사줄 수 있냐, 지금 운동화는 축구하기에 발이 아프더라, 종일 축구연습만 할 거다 등등.
다른 사람의 감정을 먼저 읽고 미리 자기의 욕구를 조절하는, 한마디로 '눈치 보는' 아홉살이가 요즘 더욱 눈에 들어온다.
나랑 닮은 건 큰 아들인 줄 알았더니,
작은 아들이었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낸 마음이 이러려나?
(한 번도 경험 못해본 사람ㅜ)
그렇다고 역시 다 안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을 대하는 건 안될 일이다. 항상 내가 틀릴 수 있고, 너에 대해 모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러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