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왜 군대 안 가?
여가부가 왜 필요해?
왜 성소수자를 그들이 원하는 호칭으로 불러줘야 해?
아이들이 혐오와 배제를 어디에서 배우는 걸까?
권정민 작가는 극우 유튜버와 알고리즘, sns 단톡 문화를 통해 확대되고 재 생산된다고 한다.
게다가 유튜브는 '정치 무관 사용자'에게도 적극적으로 정치 관련 영상을 띄우는데, 이때의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객관성과 공정성이 떨어지는 유사 언론사의 노출 빈도가 높다고도 한다.
이게 다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주의의 민낯이기도 한데, 돈 뺏기는 거야 그렇다 쳐도 아이들의 바람직한 가치관까지 뺏길 순 없지 않나.
열두살이가 나와 대화하고 나면 가끔 하는 말이 있다.
"엄마 얘기는 다 맞는 말인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깨닫게 해 준 문장이 있다.
아이들은 정체성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비난과 논의 중인 사안에 대한 비판을 쉽게 분리하지 못합니다.-42쪽
말빨이 좀 되는 부모일수록 대화를 못할 가능성이 높다. 대화의 본질은 경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가 아들을 구해낸 방법의 첫 번째 단계도 '일단 들어주기'이다. 나 정도면 좀 들어주는 엄마 아닌가 싶다가도, 혐오 발언 앞에서 그럴 수 있을지 자신 없긴 하다.
중요하고 진지한 사안을 앞에 두고 일단 듣기만 하라니! 팩트는 가장 나중에, 그것도 아주 조금씩만 흘리라니!
나 같은 사람이 많았나 보다.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 나를 기다리는 문장이 있었다.
아이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점진적으로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배려하는 것은 부모가 갈고닦아야 할 지혜이고, 궁극적으로는 공감과 사랑의 표현일 겁니다. -53쪽
흔히들 열등하다거나 다르다고 타자화하는 대상은 멀리 있는 잘 모르는 사람들, 즉 막연하고 추상적인 존재로 상정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실제 인물에 대입해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이 문제를 쉽게 타자화하지 못하게 됩니다. -48~49쪽
책은 개인적인 일화를 통해 대화주제에 접근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 역시 '여성 전용 주차장이 왜 필요해?'라는 아들의 질문에 엄마가 동생을 임신했을 때 문을 활짝 열어야만 했던 경험을 얘기했더니, 쉽게 수긍한 것.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반박을 위한 반박을 하겠다고 작정한 십 대의 남학생 앞에서 그것조차 무용지물이 될 때가 있다. 억울하거나 이해하기 힘들었던 자기 경험담이 막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들어주기'가 필요하다.
누군가 잘 들어주지 않아 억울했던 경험을,
'들어줘서 억울함은 가신 경험'으로 바꿔주어야 한다.
들어주기가 끝나면 관계가 훨씬 가까워지기도 하고,
대화는 그제서야 시작 가능하다.
작가님이 아들과 나눈 대화를 읽다 보면,
'엄마가 이렇게 똑 부러지게 대화를 잘 이끌어가면 무슨 걱정이야 '라는 부러움 반, 자괴감 반의 감정이 올라오기도 한다. 특히 '생활 속 경제 이야기로 세상의 연결성 보여주기'(77쪽) 편의 에피소드는 평소 부모가 세상일에 많은 관심과 관점을 갖추고 있어야 가능해 보인다.
뉴스 볼 시간도, 책 읽을 시간도 부족한 부모로서 부담이 되는데, 작가는 그런 독자(부모)의 마음까지 읽고 있다.
그래서 '부모에게 정돈된 답이 없음을 두려워하지 말자.'라고 말한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한 뒤 찾아보면 된다고.
나도 여기 동의하며 의견을 덧붙이자면,
즉각적인 해결이나 답을 하지 못해도 괜찮다.
"며칠 전에 그런 얘기했잖아? 엄마가 찾아보니까"로 시작하는 말도 괜찮다.
오히려 더 훌륭하다.
아이가 한 말을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고 있었던 태도,
그게 바로 사랑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