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에 있는 월아산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아파트 놀이터에서만 놀아도 신나는 아이들인데
일부러 일요일 아침 일찍 차를 태웠다. 그물 놀이터가 있다고 꼬셨지만 사실은 오후에 예약한 50분이 다였고,
그전까지 숲 속 도서관에서 책놀이를 하고, 도시락을 먹고, 낙엽을 주웠다.
그냥 뛰어놀았다.
숲해설 프로그램도 있었다.
초등~성인 대상이어서 7살 막내는 딱 한 시간만 초1로 변신했다. 다행히 해설사 선생님께서 자세히 묻지 않으실뿐더러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설명을 재밌게 해 주셨다.
나무들마다 사연이 많았다.
너구리가 똥을 싸고 간 황금측백나무,
바위 옆에서 자라느라 원래 몸뚱이의 반도 키우지 못한 오동나무, 시멘트 수로가 생기면서 올해는 열매 맺지 않고 쉬어간다는 개암나무, 부잣집 화장실에 심었다는 금목서, 뻗은 가지만큼 뿌리가 자라고 또 뿌리 길이만큼 가지가 자란다는 뽕나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 하나는 나무들에게서 관찰할 수 있는 '수관기피현상'( Crown shyness)이다.
꼭대기의 나뭇가지들이 아래에 있는 나뭇가지나 키 작은 식물의 햇빛을 독차지하는 일이 없도록 적절하게 거리를 두며 자란다고 한다. 나무 아래서 올려다볼 때 나뭇가지 틈틈이 하늘이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나무의 의도인 것이다.
*sns에서는 팬데믹 시절 많이 공유되기도 했던 사진이라고.
그때 우리가 보고 있던 나무는 뽕나무였던 것 같다.
한 그루 안에서도 나뭇가지의 높이와 위치가 층층이 어긋난 것이 신기했고, 땅 밑의 뿌리 길이만큼 나뭇가지가 뻗어있다는 설명도 인상적이었다.
그래. 그런 게 자연의 이치라면,
세 명의 어린이들이 공존하는 우리 집 생태계도 무사하다 볼 수 있겠다. 요즘 들어 부쩍 체감되는 열두살이의 사춘기조차 다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도 학교 숙제로 '동물원은 필요한가?' 토론을 준비해야 하는데 가위바위보에 져서 찬성 측 입장을 준비해야 한다며 짜증짜증~
동물원에 반대하는 자기로서는 찬성 측 논거를 아무리 준비해도 질 게 뻔하단다. 나중에는 눈물까지 찔끔했다.
누가 여자친구를 배신하랬나, 나라를 팔아먹으랬나..
왜 저래??
사춘기 초입을 실감하며 배우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 사춘기가 이런 느낌이구나. 오케이, 접수했어."
우리는 자연스럽게 열두살이와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대신 양보와 차례 기다리기가 당연한 우리 집 어린이들에게 형아 몫의 애정 1/3이 돌아간다.
아마도 나중에는 동생들에게 사춘기가 올 테고,
그때 열두살이는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이 될 테니,
다시 나의 관심은 열두살에게로 향하겠지.
고루 애정을 쏟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어느 한 구석에는 있었는데, 나무들도 그렇게 자란다.
더 잘 자랄 수 있다고,
한결 마음이 놓인다.
그러고 보니 꼭대기의 수줍음(Crown shyness)이란 이름은 '봄을 향해 눈을 뜬다'는 사춘기의 마음과도 어쩐지 닮았다. 이젠 엄마보다 다른 여자의 관심이 받고 싶어질 나이다. 아이고, 다 키웠네.
일주일 동안 나무만 보면 Crown shyness를 찾았다.
교정을 산책하다가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서서 올려다보았고, 야외 결혼식의 하객석에 앉아 신부의 머리 위에서 물들어 있는 단풍나무를 보기도 했다.
어린이들과 늘 오가는 아파트 둘레의 나무들을 가장 자주 올려다보았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