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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Apr 19. 2024

학교는 민원이 무섭다

식목일에 베인 나무

며칠 전 식목일에 교감선생님 말씀하시길,

"벚꽃나무 앞에서 사진 찍으려면 오늘까지 찍으세요!"

왜 그러시는가 하니 꽃잎이 날려온다고 민원이 들어와서 나뭇가지를 베기로 했다는 것이다.

농담인가 싶었다.

진짜요? 민원요? 진짜요?

교감샘께 답을 구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나도 모르게 자꾸만 진짜를 되뇌었다.

3월에 이 학교에 발령받아 왔을 때 운동장 저편에서 황량하게 서 있는 나무들이 의문스럽던 차였다.

길쭉길쭉 하늘로 뻗어있는 가지는 '가지'라기보다 몸통이 여러 개 솟아난 듯 보이는 멋진 나무였는데, 허공의 중간에서 뚝 끊겨있었다.

건물 뒤쪽 소나무는 더 끔찍했다. 가지라고 부를 만한 것이 하나도 없고 마치 전봇대처럼 몸통 하나만 남아있었다.

학교 조경이 뭐 이러냐고,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었지만 급한 일들을 해치우느라 오래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게 다 민원 탓이었다.

학교 울타리와 이웃하고 있는 아랫집과 옆집들이 계절마다 쏟아지는 나뭇잎 때문에 못 살겠다는 것이다.

나뭇잎 쓸어내기가 보통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몇 백의 비용을 들여 나무를 베는 방법이 최선인가?

그리고,

모든 민원을 다 수용해야 하는가.

빠르게 처리해야만 '일을 하는'것인가.

나무들이 베어나가는 그 날은 하필 식목일이었으니,

바닥에 누워있는 잔가지들을 보는 내 마음은 처참했다.




지금은 시험 기간이고, 문제 출제와 검토에 예민하다.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에 부합하는, 타당하고 신뢰성 있는 평가인지 고민하는 교사는 소수다.

민원으로 삼을 만한 문제 오류가 없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민원은 항상 생각지도 못한 데서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상상한다, 가능한 모든 오류를.

8개반을 똑같이 수업하고 판서했는지는 물론이고,

학습지를 나눠준 시기는 비슷했는지도 고려한다.

이번에 내가 수업한 소설은 현대소설의 수작으로 꼽히지만

소외된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비속어가 종종 등장하는데,

비속어가 등장하는 글을 제재로 삼았다고 민원이 들어오진 않을지 걱정한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모두의 이익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 교직공무원들은

'그 일은 교육적이지 않다.'라는 평가보다

'민원감이다'라는 한 마디가 가장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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