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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Jul 04. 2024

사춘기 아들의 허세와 인성 구분하는 법

동료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다가 '사춘기를 맞이한 아들 이야기'가 식탁에 올랐데, 맞은편에서 식사하시던 선생님이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나더라며 조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3층짜리 집에 조부모님 맨 위층에 사시고, 가운데 층 조카네 집, 일층은 세입자가 살고 있는 상황이란다.

새벽에 시험공부를 하던 조카가 공부가 마음대로 잘 안 됐는지 그 시간에 책상을 쾅쾅 내리치고 책을 벽에 던지며 난동을 피웠다. 당연히 입자는 집주인이 살고 있는 3층으로 올라가 불편을 호소했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조카에게 내려가 그 말을 전했다. 그런데 조카의 반응이

반성은커녕 "그 사람들을 내보내면 되지"라고 해서 가족들 사이에 인성 논란이 불거졌단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호되게 야단쳤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가족이 아니니까, 무수히 많은 남자아이들을 봐 왔으니까 조금 다르게 해석할 여유가 있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려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문제적인 행동과 자신의 정체성을 분리할 줄 아는 매우 성숙하고 고차원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어른도 쉽지 않다. 누가 봐도 내 잘못이 명백한 일을 남 앞에서 지적받기까지 할 때, 무안하고 괴로 건 어른도 마찬가지다. 사과는 하, 내가 왜 그랬을까 오래 자책하거나 사람들로부터 공격받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물며 사춘기를 통과 중인 아는 문제 행동에 대한 지적을 자신의 정체성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직접 보지 않았으니 장담할 순 없지만, 어른들의 훈육이 비난이나 판단을 배제하고 객관적 사실만을 기반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린이나 청소년을 온전한 인격으로 대하기보다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반쪽짜리 인격으로 대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까지 논하기 너무 멀다면, 당장 내가 그러하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

"너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 곤란하셨잖아."

"생각을 좀 해라, 상식적으로 새벽에 그런 행동이 말이 되니"

대강 그런 말들이 오갔다면, 사춘기가 아닌 청소년도 "네, 죄송합니다"라 대답하기는 어렵다. 다가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사춘기에 열일하는 전두엽을 갖추었다면 응당 자기 방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 방어가 바로 '허세'. 

 말로 '아무 말 대잔치'라고도 다.

허세인지 아니지 어떻게 구분하느냐 묻는다면,

그다음 행동을 관찰하시라고 말하겠다.

어른들 앞에서는 싹수없게 대답했지만, 다음날부터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거나 정도나 빈도수가 줄었다면 확실히 허세였던 거다.

그 조카 녀석 확실히 인성적으로 덜 자란 건 맞.

잘못을 옹호하자는 게 아니라 내가 잘못 키웠니 마니, 화내거나 슬퍼하지 말자는 것이다.

인성이 좋네 나쁘네  함부로 판단하지도 말자는 것이다.


사실 이 에피소드가 생각난 건 우리 큰아들 때문인데, 오늘 아침에도 훈육하는 끝에 지지 않고 "네,네"하고 눈 똑바로 마주치고 대답하는 모양새가 영 맘에 안 들었다.

저 녀석의 허세다, 머리론 알지만 순간 열받는 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그때 나의 훈육은 제대로 된 훈육이었던가 이 글을 쓰며 돌아볼 뿐이다. 오늘 밤에는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야지, 하고 아침과 다른 태도를 맘먹게 되는 걸 보니 괜히 허세 부린 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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