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기 시작되기 전, 이 애매한 시기에 K-고등학교는 '자율교육과정'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배움을 시도한다. '융합교육과정'이라고도 한다. 말 그대로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구성하여 학기 중 진도에 쫓겨 해보지 못했던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탐구활동을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해 보는 것이다. 스스로 목표과제를 설정하고 친구들과 협력하여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하는데, 이때 의미 있는 결과물은 생활기록부의 '개인세부능력특기사항'에 남아서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성적이 적절하게 뒷받침될 때 의미 있긴 하다.) 교사는 학기말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라도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하고 보는 편이다. 자신들의 학창 시절에 전혀 경험해보지못한 '융합'이니 '자율'이니 하는 판을 천연덕스럽게 벌여놓고 아이들을 유인한다.
나는 이 기회에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아이들과 꼭 한 번 읽고 싶었다. 문학 시간에 인간의 보편적 삶을 탐구하다 보면 결국 역사의 한 단면과 맞닿을 수밖에 없어서 종종 현대사의 비극을 언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 비약하자면, 소설가 한강이 광주의 5.18을 쓰지 않고는 다른 무엇도 쓸 수 없었다고 말한 것과 비슷하게 이 소설을 함께 읽지 않고는 문학수업을 한 것 같지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단편 소설도 완독 하기 힘든 아이들에게 책 한 권을 통째로 던져주며 탐구 과제를 설정하고 결과물을 도출하라고 하니 아이들은 죽을 맛이다. 다양하게 깔아 놓은 판 중에서도 이 책을 읽겠다고 모여든 아이들이니 동기가 아예 없지도 않았을 텐데, 한 권의 책을 끈기 있게 읽어내기는 힘든 모양이다. 걔 중에는 이거 왜 해요?('제발 우리 좀 가만 버려두라'의 완곡한 표현)라고 묻는 학생이 있기도 했다.
어디까지 교사가 개입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수업도 아닌데 내가 이것저것 설명할 수도 없고, 생각을 정리할 만한 활동지를 만들어서 주긴 했지만 그 '생각'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어려워 보인다.
<소년이 온다>는 광주의 5.18을 경험한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 모음집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서 핍진하게 그날의 진실을 전달하는 소설이다. 그러나 군인의 총에 맞아 죽은 정대라는 소년이 혼의 시점으로 서술하는 2장을 읽고, "정말 영혼이 있을까?" 수준의 질문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가 소설 읽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그랬듯이.
읽으라니 읽고, 문제는 풀 수 있었다. 그러나 소설적 장치를 단서로 작가의 의도를 차근차근 스스로 풀어나가는 훈련은 시간이 든다. 학교 수업 시간에 좀처럼 할 수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해 보자, 한 번만으로 안 되겠지만 아예 못 해 본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그러나 어떻게? 내가 항상 어려움을 느끼는 지점이자 교사로서 나의 부족함을 확인하는 단계에 이른다.
질문하는 수밖에 없다, 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생각을 깨우고, 스스로 의미를 찾아 나가는 길목에 서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마침내 스스로 만든 질문을 길잡이 삼아 더 먼길을 가게 만드는 것이다.
늘 해 오던 일, 확신은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다만 요즘은 17년 차 국어 교사로서의 매너리즘을 벗어나기 위해 독서모임과 연수에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있다. 그때 '퍼스널 브랜딩'에 관한 강의에서 주어진 질문이 마음속에 내내 남아 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차이는 무엇일까?
질문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찾다 보니 어느샌가 교사로서의 롤 모델이 생겼고 '읽기를 돕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생겼다. 그래서일까, 예전보다 좀 더 수업에 애정을 쏟고 있다. 수업이 끝나면 다시 돌아보지 않았던 작품을 다음번엔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기록하고 있다.
출간 10주년 기념으로 표지를 새 단장한 '소년이 온다'를 아이들이 읽는다. 몰려오는 졸음을 참기도 하고, 충격적이고 끔찍한 장면을 질문으로 바꾸어 활동지에 옮기기도 한다. 삼일 간의 책 읽기와 토론이 아이들에게 어떤 결과로 남을지 무척 궁금하다. 좋은 수업은 끝나고서야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으니, 당장에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더라도 실망하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