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 지금도 주사는 지옥
하지만 아가를 위해 맞아야 하는 백신
날이 조금씩 쌀쌀해지면서 노을과 같은 모습을 한 나무들이 쏙쏙 드러나는 시기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그런 계절.
오랜만에 미세먼지 하나 없는 가을이 다가왔지만 최대한의 집콕 생활은 끝나지 않고 창밖 생활이 유지되었다.
아무래도 돌파 감염의 무서움에서 우리 아가를 지키기 위함은 집에서 머무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유일한 바깥구경의 시간이 존재했다.
빠르게 다가오는 병원 정기검진일로 작은 위로가 되었다.
배가 뭉친 이후 조산기를 우려하여 다른 사람들보다는 다르고 많이 병원을 방문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가를 2주에 한 번씩 보니 적당히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병원에 들어서서 기본적인 측정을 끝내고 앉아마자
간호사 선생님이 다가왔다.
“오늘부터 임산부 독감주사 무료예요. 맞으셔야죠?”
“네? 꼭 맞는 거죠?”
“그럼요! 안전을 위해서 맞는 게 좋아요~”
그 전에도 주사를 맞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 없는지라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간호사 선생님은 작성해야 할 서류를 가져다주셨다.
하필 전날이 대체공휴일이어서 사람이 많아 진료 순번은 저 뒤에 차지하고 있었다.
“검진 들어가기 전에 맞고 들어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죠…….”
어른이 된 이 순간도 주사 맞는다는 소리는 왜 이렇게 무서운지,
내가 맞아야 아이가 안전하다고 하니 맞긴 맞는데, 사실 살면서 독감주사는 잘 맞지 않았었다.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그렇게 백신 접종 관련 서류 작성을 모두 마치고 그걸 확인한 간호사 선생님은 나를 이끌고 주사실로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왼쪽 팔을 준비해 달라고 툭툭 신호를 보내주셨다.
아가를 만나고 맞았으면 좀 덜했을까. 아니다. 똑같았을 것 같다.
“자~ 다 됐어요. 오늘은 샤워하지 마시고 몸에 이상 있으면 얼른 병원오셔요~”
“네…….”
그렇게 독감백신을 맞고 나오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뻐근한 팔을 들고 하루를 보냈지만 보호막이 쳐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숙제 하나 끝났으니 홀가분했다.
근데 알고 보니 이게 끝난 사항이 아니었다. 사실 더 큰 게 남아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독감주사 맞고 산모수첩에 독감+ 표기! 첫번째 산. 하하
독감 주사를 맞고 한 달이 지났고 또다시 정기검진 가는 날이 되었다.
이날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 아침부터 날아다녔다. 아침에 남편도 출근하면서 내 배를 문지르며 아가에게 인사를 해주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끝없이 좋아졌다.
어쨌든 얼른 준비를 마치고 친정엄마와 병원을 함께 가게 되었다.
날씨도 좋고 공기도 좋고 한껏 뛰고 싶었지만 꾹꾹 눌러 담았다.
오늘은 무조건 맛있는 거 먹읍시다!라고 외치며 차를 타니, 엄마는 오늘은 왜 이리 기분이 좋은가~ 하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렇게 도란도란 떠들며 20분을 달려 도착한 병원에 들어서니 오늘따라 사람도 적었다.
기본 측정을 마치고 앉아서 10분 정도 기다리자마자 내 이름이 불렸다.
배가 고파 찡찡거리는 카톡을 보내려고 했는데, 오늘은 내 마음처럼 움직이는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우리 아가는 내 기분과 다르게 신비주의를 유지하여 얼굴은 보여주지 않았다.
선생님은 볼 시간 많으니 실망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셨다.
초음파 확인을 끝내고 선생님 앞에 앉자마자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들었다.
“오늘은~ 백일해를 맞고 가세요~”
“백일해요?”
“네 예방접종이에요. 엄마가 맞으면 항체 생기니까 맞는 게 좋아요. 맞고 갑시다.”
“네…….”
백일해는 선택이라 되어있지만 거의다 맞는거 같아요
순간 두둥.
백일해는 뭔가 싶었다.
대답은 씩씩하게 하고 나왔지만 일단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간호사 선생님께 또 물었다.
“저 뭐 맞아요?”
“아~ 백일해 맞는 거예요. 독감 때 해보셨죠? 이거 작성하시고 같이 주사실 가요~”
앉아서 주신 서류를 작성하는 척 백일해에 대해 검색을 하였다.
‘백일해란 보르데텔라 균이 유발하는 호흡기 질환으로 심한 기침이 주요 증상이다. 기침이 심해지면
얼굴이 빨개지고 눈 충혈, 구토 등을 하며 전염성이 강해 2차 발병률도 있다. 영유아에겐 특히 치명적.’
그래서 그런지 많은 임산부들이 아가를 마주하게 될 가족들에게도 백일해 주사를 맞으라고 한다고 했다.
특히, 요즘 남편들은 필수적으로 맞는 분위기였다.
위험한 바이러스이니 요즘 같은 시국에 맞아야지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서류 작성을 마치고 주사를 맞으러 들어가 또다시 왼팔을 내 보였다.
맞는 순간 알았다. 독감과 다른 느낌! 약이 들어오는 느낌이 싹 들고 뻐근함이 느껴졌다. 한마디로 아팠다.
잠깐 그러겠지 하고 점심을 와구와구 먹고 잠시 산책을 즐기다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이 되니 이상하게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산책을 후회하게 되었다. 얼른 들어와 쉴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오는 느낌도 몸살이 살살 오는 듯, 감기가 살살 오는 듯했다.
몸이 너무 무겁고 아프기 시작했다. 다행히 태동을 열심히 해주는 우리 아가 덕에 안심하고 있었지만
병든 닭 마냥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앉아 있다가도 금세 누워버렸다.
살짝 미열을 가진 몸살 기운은 꼬박 4일간 이어졌다. 남편은 걱정되는 마음에 병원에 가야 되는 거 아니냐고 안달을 냈지만 검색해본 결과
백일해 맞은 사람들은 4일 정도 몸살기에 무거워진 몸을 마음처럼 컨트롤하는 걸 어려워했다.
다행히 4일이 지나니 몸이 엄청나게 가벼워졌다.
확실히 뱃속에 새로운 생명이 있다는 것과 관련된 모든 부분이 처음이라 그런지
하나하나 사소한 것도 걱정이 되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미리 예방하는 것도 무섭다니!
건강하게 10개월을 아가가 잘 있어주기만 한다면 그 어떤 것도 못하겠나 싶다.
이렇게 하루하루 강인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경험하고, 배워가고 있는 거 같다.
우리 아가를 지키기 위해서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고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더 많이 해야 하고
엄마가 된다는 건 새롭게 어른이 된다는 점인 것 같다.
아직 어린애 같은 나 자신이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기쁘면서도 슬프지만…….
하지만, 이런 강한 발언도 다 끝나니깐 할 수 있다는 점!
사실 어른인 지금도 주사가 너무 무서워 피하고 싶은 건 피하고 싶었다는 게 사실이지만
이보다 더 강한 욕구가 아가의 건강일 뿐!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