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가 맺히듯 결론이 나다

과연(果然)

by 쓰야

글을 쓰다 보면 정답이 없다는 사실 앞에서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어요. 여러 독서모임에 참여해 보기도 하고, 모닝페이지도 써 보고, 나름 북스타그램도 운영하고 있지만, 책과 글을 가까이할수록 오히려 더 손에 닿지 않는다는 막연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어느 정도까지 내 속마음을 드러내야 하는지, 어느 정도까지 독자의 시선에서 글을 써야 하는지, 이 글은 일기인지 에세이인지 같은 질문들 앞에서 한없이 모니터만 바라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이 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글을 쓰면서도 내가 과연 그런 자격과 그릇이 되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의심하게 돼요. ‘내가 과연 작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요.


과연의 사전적 정의를 먼저 떠올려봅니다.

1. 결과적으로 사실로. 설정된 미래의 결과나 남의 주장에 대하여 그 실현성이나 개연성을 의심할 때 쓰는 말.

2. 알고 보니 정말로. 이미 들은 이야기나 알려진 내용이 사실로 확인될 때 쓰인다.


저는 주로 첫 번째 의미로 '과연'을 사용해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연'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 이유는, 아직 확신보다 질문에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는 건,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과연'의 두 번째 의미에 조금 더 집중해 보려고 해요. 의심하던 것들이 알고 보니 정말로 현실이 될 때, 혹은 기대했던 대로 결과가 나타날 때 "과연!"이라는 감탄사를 쓰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 단어 속에는 '열매'가 숨어 있어요. 앞서 '사과(沙果)'편을 보신 분들이라면 눈치채신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과연 (果然)
果 (열매 과): 열매, 결과, 과감하다
然 (그러할 연): 그러하다, 상태를 나타내는 접미사


왜 '과연'일까?

나무가 꽃을 피우고 비바람을 견디는 이유는 딱 하나,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열매는 나무가 노력을 다한 끝에 보여주는 결과물이니까요.


여기서 '과(果)'는 단순히 먹는 과일을 넘어, '말한 대로 이루어진 결과'라는 뜻으로 확장됩니다. 즉, 과연(果然)이라는 말은 "나무에 열매가 맺히는 것이 당연하듯(然), 내가 생각했던 결과(果)가 그대로 나타났다"는 뜻이 되는 거예요.


꽃만 보고는 사과인지 배인지 헷갈릴 수 있지만, 열매가 열리고 나면 분명 해지잖아요. 그 확실함의 순간에 우리는 "과연!"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요.


이것도 알아두면 꿀잼!

그래서 우리가 결단력이 있는 사람을 보고 '과감(果敢)하다'고 하거나, 어떤 일의 끝을 '결과(結果)'라고 부르는 것도 모두 같은 원리입니다.


과감(果敢): 열매를 맺듯 딱 부러지게 감행하다.

결과(結果): 열매(果)를 맺으며(結) 마무리되다.


결국 '과연'은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이 비로소 단단한 열매가 되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쓰는 말이 되는 거예요. 마치 수확의 기쁨을 제대로 누릴 수 있게 되는 단어랄까요.



그래서 글을 쓰며 늘 갈망해 왔던 저는 과연 작가가 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작가가 되기로 합니다.


여러분들은 2026년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고 의심해 오던 것들을 '과연 OO이 되다'로 바꿔 말해 보면 어떨까요.

댓글로 소망과 목표를 적어주세요.


그 목표가 '과연'이라는 말로 이루어진 모습을 직접 마주하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작가의 한마디: 다음 페이지 미리 보기]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데?"

우리는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이 단어를 씁니다. 그런데 '심각'의 각(刻) 자가 사실은 날카로운 칼로 무언가를 '새기는' 모습이라는 걸 알고 계시나요? 다음 장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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