뜀박질하는 사람들

“조깅이야, 러닝이야?”

by 이쁜이 아빠

처음엔 단어의 차이쯤으로 가볍게 여겼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두 단어에는 시간의 흐름, 문화의 변화, 그리고 세대의 체감이 녹아 있다.

20년 전쯤이었을까.
아침저녁이면 동네 공원에 바람처럼 스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조깅'을 하던 이들이었다.

헐렁한 트레이닝복에 땀에 젖은 이마, 목에 수건을 두르고 작은 라디오를 끼운 채 발을 옮기던 풍경.
당시 조깅은 운동이라기보단 일상의 습관, 건강을 위한 작은 실천이었다.

그 시절, 미국 영화 속 장면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뉴욕 센트럴파크를 달리는 백발의 신사, 캘리포니아 해변을 따라 조깅하는 커플. 나도 괜히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뛰어보며 ‘헐리우드 감성’에 잠시 빠지기도 했다. 뛴다기보단... 살살 걷듯, 숨이 찰 때까지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깅'은 '러닝'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제는 기능성 의류에 스마트워치를 찬 러너들이, 심박수와 거리, 페이스를 분석하며 뛰고 있다. 이들은 목표가 있다. 마라톤 완주, 체지방 감량, 혹은 기록 경신. 누군가의 ‘명상’이었던 조깅은 이제 누군가에겐 ‘전투’가 되었다.

나도 요즘 1주일에 3~4번은 가민(Garmin) 워치를 차고 기록에 노예가 된다.
몇 km를 뛰었는지, 평균 페이스는 어땠는지, 심박수는 몇이나 되었는지...
처음엔 내 몸을 아는 수단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운동이 ‘자유’가 아닌 ‘숫자’로 바뀌었다.
그러면 마음은 묘하게 조급해지고, 느림에 대한 여유는 사라진다.

그 변화의 전환점은 아마도 ‘코로나19’였을 것이다.
거리두기와 마스크, 닫힌 헬스장과 체육관. 사람들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 몸은 답답하고, 마음은 막막한 시기. 그때 선택된 것이 바로 ‘걷기’와 ‘뛰기’였다. 처음엔 걷다가, 조금 익숙해지면 뛴다. 그렇게 러닝은 전 세계적인 붐이 되었고, 나도 어느새 작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조깅’이라는 말이 좋다.


조깅은 마음을 달랜다. 러닝은 기록을 쫓지만, 조깅은 풍경을 느낀다. 조깅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다.

아침 햇살이 부서지는 강변로을 천천히 뛰다 보면, 20년 전 그 시절이 떠오른다. 젊은 아빠의 모습, 아침잠에 부스스한 동네, 그리고 당시의 조용한 땀냄새.

요즘 아이들은 러닝을 하고, 나는 여전히 조깅을 한다.
속도는 느리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다.

근데, 나도 느낀다.

내가 지금 조깅을 하는걸까?. 러닝을 하는 걸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유행을 즐기는 건가?


달린다는 건 결국, 다시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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