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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자전거여행 29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 입성하다

by 이쁜이 아빠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시작한 자전거는
수천 번의 오르막과 내리막,
수없이 바뀌던 바람의 방향을 지나
마침내 이곳,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앞 광장에 나를 내려놓았다.

성당이 눈앞에 들어오기 전,
어디선가 백파이프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익숙한 그 소리는
좁은 골목을 타고 퍼지며
점점 더 크게, 더 깊게 울렸다.
마치 누군가
“여기까지 잘 왔다”고,
“이제 그만 쉬어도 된다”고
내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소리를 따라
아주 천천히,
정말 마지막이라는 걸 알면서
페달을 밟아 성당 앞으로 들어섰다.

성당 앞 광장에서 나는
닷새 전 우연처럼 만났던 스페인 아빠와 아들을 다시 만났다.
자전거 고장으로 길 위에서 만났고,
그 이후로 우리는
속도를 맞추고,
물을 나누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웃음으로 길을 이어왔다.

이번 순례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고 했다.
아들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아버지가 계획한 순례길이라고.

케이크 대신 바람을,
촛불 대신 햇살을,
축하 대신 함께 흘리는 땀을
선물로 준비한 생일.

성당 앞에서
아들은 두 주먹을 하늘로 들어 올렸고,
아버지는 그 모습을
카메라보다 더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알았다.
이 길은
젊은이를 단련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부모를 완성시키는 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제야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자전거 옆에 서서
아무 말 없이 성당을 올려다보았다.

기쁨이 벅차오르는데,
소리 내어 웃고 싶지는 않았다.
환호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조용한 숨 고르기 같은 감정이었다.

‘도착’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고요할 수 있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기쁨은 소리에서 오지 않고,
숨이 가라앉는 순간에 온다는 것을
나는 그 광장에서 배웠다.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울고 있는 사람,
웃고 있는 사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
아무 말 없이 하늘만 바라보는 사람.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 와 있었고,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인생의 한 장을
조용히 닫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서 있으니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왜 여기까지 왔을까.

이 길의 시작은
마르세유가 아니었다.
내 인생에서의 출발은 ‘퇴사’였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늘 누군가의 직함으로 불렸고,
정해진 시간표 안에서
정해진 역할을 해왔다.

그 모든 걸 내려놓았을 때,
자유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막막함과 공허함이었다.
이제 나는
무엇으로 나를 증명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도망치듯 자전거를 탔다.
유럽의 지도 위에
한 줄의 길을 긋듯,
내 마음에도
다시 숨 쉴 수 있는 길을
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까지 와 있다.

그때서야
내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웅장한 성당도,
사람들로 가득한 광장도 아닌,
먼지 자욱한 내 자전거가
조용히 내 앞에 서 있었다.

비를 맞고,
자갈을 넘고,
넘어질 뻔한 순간마다
나보다 먼저 흔들리던 자전거.

나는 그제야
모든 게 실감이 났다.

아, 정말 끝까지 와버렸구나.
그리고 동시에,
이제 다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함께한 자전거와 나,
그리고 콤포스텔라 성당 앞에 서 있는 나.

나는 이곳에서
무언가를 증명한 것이 아니라,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온 나 자신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제 나는
젊어지지는 않았지만,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더 빠르지는 않지만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산티아고는
내 인생의 목적지가 아니라,
내 인생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 준 자리였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여행을 끝낸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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