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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Nov 24. 2018

시를 잊은 당신은 사람을 잊은 당신이다.

파랗게 멍든 시간들.9

입으로 반복해서 중얼거릴때 입안에 맺히는 소리, 혀의 움직임이 즐거운 단어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오물오물’이나 ‘말랑말랑’ ‘또르르’같은 글자들 정도 되려나. 자꾸만 입에 담게 되는 단어들. 입에 착 달라붙는다는 말은 이럴때 쓰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적당한 소리. 절제 할 수 있는 발음. 문장이 소리가 되었을 때 가져올 수 있는 장점은 문자만으로 전달 할 수 없는 제 2의 감각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좋은 딕션과 좋은 글이 만나는 것 만큼의 시너지는 없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면서 한번씩 입으로 소리를 내서 읽어보는 편이다. 나의 문장을 누군가가 입으로 머금었을때 그 느낌이 궁금해서. 그러다보면 종종 몬더그린이 일어나거나 의미 과포화가 일어나버린다. 불편하긴 해도 재미있는 현상들이어서 싫지는 않다. 익숙함에서 오는 낯설음이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익숙한데도 다르게 느껴지는건 반복되는것이 지루해지는 우리가 받은 선물일지도 모른다. 무의미한 반복속에 지침은 없어져 있을테니까.

사람을 반복해서 파고드는것. 어쩌면 그것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시같다고 하는게 맞는것 같아. 처음 읽어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시를 반복해서 읽는것처럼 사람을 반복해서 읽는것도 그 사람의 깊이와 새로운 것들을 찾아가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 계속 읽고 읽으면 이해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그것. 매번 이건 나의 착각 혹은 오만이라 생각하면서도 또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내가 여기 있는거지. 그리고 착각, 오만이라는 표현을 하더라도 사람은 시가 맞다. 반복해서 읽지 않으면 내면을 알 수 없잖아.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드라마가 있다. 한양대학 국어교육과 정새찬 교수의 동명의 서적에서 따온 제목이지만 둘다 시와는 관련이 없다. 드라마도 보지 않고 책도 읽지 않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순히 저 문장에 대한 이야기다. 앞서 사람은 시와 같다는 말을 했는데, 시를 잊은 사람이라는건 결국 사람을 잊은 사람이라는게 아닐까. 요즘엔 사람들이 긴 문장을 접하는걸 싫어한다. 3줄요약이라는 말. 많이 하잖아. 3줄만으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글들이 수두룩한데 사람은 오죽할까. 깊이를 아는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싫어하기 시작했다는 기분만 가득하다.

좀 더 이어서 말해보자면 ‘TMI’라는것도 있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정보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하면 과정보라고 질색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사람에 대해 모르는 부분을 알고 그 사람의 새로운 모습과 이야기 할 수 있는게 즐거운거 아닌가 하더라도 서로가 싫어하니 그냥 이야길 안하고 넘어가게 된다. 결국 요즘 알게되는 친구들은 깊은 이야기를 하기도 어렵고 그냥 서로가 좋아하는 부분만 맞춰 주려다 보니 이 사람이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 저 사람인듯한 다 똑같은 모습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나만큼은 ‘TMI’라는 것들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분명 나에 대해 이야기 하고 공통사를 찾고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아지는게, 또 이런 부분은 나와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여긴 또 다르네 하는 기분이 들 때 점점 이 사람을 알아간다는 해소감? 만족감? 비스무리한 것이 가슴 언저리에 차오른다. 분명 나쁜 느낌이 아니야. 오히려 좋은 느낌인걸.

그러니까 나는 당신 이름을 입에 몇번이고 오물거린다. 당신 이름을 읽고 또 읽다보면 당신을 읽을 수 있을거 같다. 당신을 읽고 또 읽다보면 당신을 이해 할 수 있을거 같다. 이게 내가 당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당신을 중얼 거릴때 당신의 이름이 입에 맺히는 느낌이 좋다. 당신을 부를때 나의 소리가 당신에게 닿는 느낌이 좋다. 아직 잘 모르는 당신이 좋아하는 것, 당신의 일, 당신의 사고관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즐겁다. 나는 당신을 더욱 읽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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