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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Nov 12. 2018

부산

10월입니다. 봉긋하게 피어 오른 능소화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저는 2년이 지나 다시 이곳 부산에 있습니다. 이맘때였죠 그 때도. 해운대 바닷가를 걸으며 어찌 할 줄 몰라 조막만한 당신 발걸음을 내 보폭 줄여가며 따라 걷기만 하던 제가 그 때 거기에 있었습니다. 해안가를 쭉 따라 걷다가 마린시티 선베드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당신과 제가 있었습니다. 고마워요. 아직도 그 기억은 새벽 마른 땅위에 이슬 촉촉히 내려 앉듯 기억을 적셔주고 있습니다.

해운대역으로 향하던 길이 있습니다. 그 길만 보면 몽글몽글 기억이 피어오릅니다. 지금 이곳이 무채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감각하고 아무 감정 없이 걸어서 그런걸까요. 이곳은 그 때와 조금씩 달라졌네요. 제 기억에서 그 순간들을 걷어버리려는 시간의 노력 같습니다. 조금은, 시간이 밉네요.

센텀시티는 참 좋은 곳이에요. 좋은 영화와 좋은 식사 좋은 디저트. 그때 당신은 젤라또를 참 맛있게 먹었어요. 그래서, 그래서 다시 한 번 먹고싶어졌어요. 어젠 먹지 못했지만 오늘은 먹어보려구요. 달콤하고 차가워서 혀에 닿으면 기분 좋아지는 젤라또. 그렇게라도 씁쓸함을 지워야겠지요. 잡아보려해도 어느덧 부서지고 마는 한줌의 포말처럼 내 손을 빠져나가버린 당신은 그렇게 나의 모래성을 헤집고, 쓸어가버렸어요.

어제 저는 말 그대로 기억을 걷는 시간을 보냈어요. 기억위를 걸어다니며, 기억을 걷어냈어요. 어쩔 수 없나봐요. 당신과 제가 시작한 곳인데. 어떻게 잊겠어요 제가. 10월의 부산은 참 아픈곳이네요. 불꽃 놀이를 보며 환호성도 질러보고 차가운 바닷물에 맨발을 담가보기도 하고, 파아란 바닷물이 하얗게 부서지는 것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거리의 악사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구경하는. 그 작은 발걸음 하나 이제 따라 걷지 못하는 이 곳 부산은 참 아픈곳이에요. 그러네요. 이제 따라 걸을 발자국이 없어졌어요. 파도가 원망스러워요. 휩쓸고 가 다시 평평하게 만들 뿐인 파도가 미워요. 알고 있어요. 저 또한 모든걸 정리하고 평평해져야 한다는 것을. 그래도 미운건 어쩔수가 없어요. 언젠가 10월의 부산이 아프지 않을 날. 그날의 우린 뭇내 아름다웠다고, 설레었다고 기억을 흩뿌리러 다시 올게요. 잘지내요. 많이 좋아했어요. 많이 사랑했어요. 오늘도 당신이 안온하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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