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러시아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조금씩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인사정도 건넬 수는 있게 된 것 같아서 나름 재미를 붙이고 있는 중이다. 하나 하나 배워가던 도중 러시아어에는 한국어로 딱히 번역을 할 수 없는 글자들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토스카’ 라는 글자가 있는데 번역상 ‘감정적 아픔’ 혹은 ‘우울감’이라고 표현 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이 단어가 갖는 의미는 더 깊은 곳에 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이 단어의 뉘앙스를 어떤 영단어로도 전달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딱히 한국말로 표현한다면 ‘별 다른 이유 없는 커다란 정신적 고통’으로 말을 하거나 ‘알 수 없는 마음의 고통, 혼란스러운 불안.’ 정도가 되겠지. 아마 이 또한 이 단어의 본질적인 뉘앙스를 전달하지는 못할 것 같다.
어쩌면 이런 부분은 한글이 제일 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편으로 한다. 한글의 단어나 문장은 그 의미가 정 반대로 빙 돌아 있거나, 한번쯤 꼬아서 전달되는 경우도 빈번하기에 처음 한글을 접하는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단어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였다가 후에 의미를 알고 당혹스러워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외국인들에게만 어려운 언어일까 싶은 순간들이 찾아올 때가 있다. 문장이라는건 의미를 전달하는데 있어서 감정과 상태를 고스란히 건넬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다. 때로는 전달에만 그치지 않고 본질적인 공감과 상태에 대한 호응으로 같이 웃고 울게 되는 비 언어적인 교감까지 이어진다. 이게 바로 언어의 뉘앙스가 줄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문자 그대로가 아닌 문자가 주는 느낌적인 느낌. Feel. 어쩌면 지금 내가 작성하고 있는 이 문장또한 어떠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겠지. 그럼에도 종종 이 ‘뉘앙스’라는 놈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를 본다. 너무 배배꼬여버리거나, 너무 단순해서 있어서 나의 해석과는 정 반대로 의미를 부여해버리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이러한 소통의 오류는 작은 오해부터 크게는 관계를 망치는 일까지 범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갈라지고 한참후에야 ‘그때 그런 뜻이 아니었다.’ 라며 화해를 하는 상황들을 가끔 마주하게 된다.
뉘앙스는 문장에만 있는것일까?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눈빛, 어투, 손짓 그리고 표정에도 뉘앙스가 있다. 채팅언어나 이모티콘에서는 절대 줄 수 없는 가장 본질적인 뉘앙스다. 이걸 표현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표현 이쁜 사람은 마음도 이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표현을 하는 사람들은 늘 고맙고 반갑다. 마음이 있는데 표현은 못한다는 걸 믿지 않는다. 결국 표현은 기본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어휘를 통한 표현이 아니더라도 표현은 존재한다. 그렇기에 나는 당신에게 나를 표현한다. 나의 마음에 대한 뉘앙스를 풍긴다. 당신은 순한 단어를 쓰고 고운 억양을 지녔다. 당신의 말은 둥근 만년필의 곡선처럼 여운을 남긴다. 숨길 것 같은 말투와 표정에 여백이 있다. 난 그 빈 곳에 마음이 닿고 당신을 궁금히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