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늬 Oct 24. 2020

강아지 데려오는 것도  참 '너답다'는 말

epidsode10. 우리는 서로를 알아봤다

버리는 사람들과
가족이 되어주는 사람들


나는 원래 태어나기를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모두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무용하지만 무해하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그러니까 내가 '개'라는 따뜻하고 순수한 동물을 사랑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강아지를 좋아해서 강아지를 키우게 됐고 강아지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기견이나 믹스견, 개농장의 실태나 매일 가족으로 부터 버려지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기견 보호소 인스타나, 구조 활동을 하는 봉사자의 SNS를 팔로우하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고통받고 있는 죄 없는 아이들을  다 도울 수 없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고통스러웠고 그 사실을 외면하는 것, 외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심리적으로 꽤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임보하고, 동오를 입양하면서 몇몇 쉼터의 공식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기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인스타에서 눈여겨 보던 아이가 결국은 안락사 되었다는 소식을 보게 되었을 때나, 보호소에서 유행하는 홍역에 걸려 2-3개월된 아기 강아지가 별이되었다는 소식을 듣는 날은 왜인지 하루종일 슬프고 무력한 기분이 들었고, 반면에 걱정하던 아이가 평생 가족을 만나 보호소를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 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들떴다.


내 인스타 피드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다양하고도 어이없는 이유로 버려지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올라온다. 내 눈에는 인스타 속 그 아이들이 모두 동오 같이 느껴진다.


'내가 동오가 아니라 다른 강아지를 선택했더라면,

그러면 별이된 이 어린 강아지가 어쩌면 우리 동오가 될 수 있겠구나'


누구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은 이 약하고 순수한 한 존재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선택에 의해서 좌지우지 된다는 사실이 잔인하고도 억울하다. 근교로 놀러갔다가 길거리에 떠도는 다리 다친 강아지를 본 적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까 도망가 버리던 강아지, 그날 나는 마음 아파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직도 그 장면이 문득 문득 떠오른다. 변명을 하자면,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길거리에서 강아지를 구조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경계심이 많은 강아지를 구조하는 것도 힘들지만, 구조해서 보호소에 간다해도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 나는 어떤 행동을 했어야 옳았을까 몇 번을 다시 생각해봐도 답을 내기 어렵다. 그저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다음에는 더 나은 행동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다리 다친 강아지를 지나친 후 집에 돌아와 한참을 후회했다. 근처 보호소에 전화라도 할 걸 내 용기없음을 자책했다. 누가봐도 다리 한쪽이 다친 채 도로로 도망다니는 강아지는 너무 위험천만해보였다. 먼저 구조한 뒤에 다음 일을 생각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마음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다. 사실 나는 동오를 키우면서 내 앞가림 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한 생명의 평생을 책임진다는 것이 감히 어떻게 쉬울 수 있을까. 그래서 강아지를 구조하는 봉사자분들을 보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절로 든다.


용기없고, 이기적인 사람이지만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라도 버려진 아이들을 돕고 싶다.  첫번째는 동오와 끝까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믹스견이어도 유기견 출신이어도,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작지 않아도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두번째는 동오와 같은 아이들을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가벼운 동정심으로 임시보호나 입양이라는 일을 결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장난감 고르듯이 예쁘고 작은 강아지를 사고 팔지 않기를 바란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느낄수 있는 수 만가지 불편한 점들을 간과한 채 무작정 입양하지 않기를 바란다.


대신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강아지와 함께 살아가면서 느끼는 '함께 살아가는 것'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기를 바란다. 강아지가 보여주는 대가없는 사랑과 신뢰로 삶이 보다 충만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를 바란다. 다른 무엇보다도 한 생명과 가족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되기를 바란다.



날 알아봐준 너와 널 알아봐준 나


사실 처음 동오를 집에 데려왔을때 동오 때문에

엄마랑 여러번 투닥거렸다. 털빠지고 냄새나고 귀찮고 멍청하다고 본가에 잠시 머무는 동안 동오를 너무 눈치를 주길래, 내가 동오에게 못할 짓을 했구나 더 사랑 받을 수 있는 집으로 보낼걸 이라는 생각에 울면서 싸웠던 기억이 난다. 내가 책임지겠다는 생각으로 데려온거고 엄마도 동의하지 않았냐 그렇게 눈치줄거면 동오 데리고 집에 가겠다. 눈치를 이렇게 주는데 내가 여기 올 수 있겠냐 하면서 엄마 입장에서 서운할 법한 이야기만 쏟아냈지만 어쩔수 없었다.


다행히 동오는 영특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라 얼마 안지나 엄마의 사랑도 독차지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집에와서 사랑받으니 동오도 얼굴이 폈다

처음에는 개를 데려와도 피부병걸리고 꼬질꼬질하고 족보도 없는걸 왜 데려왔나 했는데 그래 이제보니 강아지 데려오는 것도 참 너답다'


강아지 데려오는 것도 참 너답다는 말이 왜이렇게 듣기 좋던지 누구도 관심가지지 않고 하찮다고 생각했던 존재가 나의 사랑으로 인해서 달라졌다는 사실이 좋고, 꼬질꼬질 냄새나고 피부병 걸린 동오가 누가봐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로 변했다는 사실이 기쁘다. 내가 동오를 알아봐준 덕분에 동오는 내 인생을 더 많이 행복하고 조금 덜 외롭게 바꿨다. 동오를 알아봐준 나와 날 알아봐준 동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여전히 매일 누군가는 강아지를 너무도 쉽게 버리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 누군가는 장애가 있고, 아프고, 나이든 강아지들을 평생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로를 알아봐주는 인연 덕분에 버려진 강아지는 사랑받는 가족이 되고, 강아지를 입양한 보호자는 조금은 덜 춥고 조금은 덜 외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된다. 어느 쪽의 힘을 더 믿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무조건 더 선한쪽을 믿을 것이다.


돈과 권력과 이기심이 인간과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아름다운 말과 글과 사람들에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고

사랑과 사람들의 선의가 이 세상을 지탱해나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좀 봐줘라..
햅삐 할로윈이개


언니 감시하기





수민

강아지 동오와 둘이 살고 있습니다.

본업은 기획자, 부캐는 동오 언니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instagram : sumsumi_n


동오

진도 믹스 시 고르자브종 스트릿 출신 강아지

동네에 모르는 사람과 강아지가 없는 핵인싸견

하루에 두 번 산책해도 지치지 않는 개너자이저

유전자 구성이 다른데 왜 언니랑 성격이 같은지 미지수

@instagram : dogdong5



코로나가 끝나야 해외입양길이 더 많이 열릴텐데요

모든 강아지들이 어디서든 좋은 가족을 만나길 바랍니다.


이전 09화 엄마는 아프면 안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