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모를지라도,

by Jane Anne


나는 이름을 참 모른다.

새 이름, 나무 이름, 꽃 이름은 대부분 어릴 때 알았던 것들이다. 이곳의 생소한 단어들도 시작하는 첫 글자와 뒤따라오는 글자들의 이미지로 기억한다. 그러다 보니 말로 옮겨야 할 때는 버벅거리고 만다. 몇몇 친구들의 이름을 제외하고, 새로운 사람들의 이름을 외워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사람의 말에서, 아니 그보다는 어떤 사람의 글에서 꽃 이름, 나무 이름, 새 이름이 아무렇지 않게 쓰여있으면 부러움이 슬쩍 인다. 시인 김춘수는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의 꽃이 된다고 했다. 내 이름은 마지막 글자의 받침 때문에, 이곳 친구들이 발음하기가 쉽지 않다. 가운데 한 글자만 불러도 된다고 특별히 허락해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친구가 똑똑히 내 이름을 불러 주었다. 순간 뭔가 특별해 친구를 바라봤다. “네가 내 이름을 제대로 불러준 건 처음이야!”, 친구는 여러 번 연습했다며 얼굴이 발그레 해졌다. 정말 시인의 말은 맞는 것 같다. 그녀의 일상에서 따로 시간을 내어, 내 이름을 연습해 보는 장면을 떠올리면, 마음이 은근해진다.

봄날의 공원을 산책하면, 새들의 소리가 아직 비어 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메아리 되어 울려 퍼진다. 내게 봄은 땅의 꽃들과 나무의 새순도 있겠지만, 싱그럽고 생생한, 그리고 가볍고 예쁜 그들이 내는 소리의 화음도 포함된다.

큰 아이가 온라인으로 생물 수업을 들을 때, 선생님이 새소리를 들려주고 계셨다. 아이들은 그 새 이름을 기억해야 했다. 지금 나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다. 직박구리, 찌르레기, 굴뚝새, 벌새, 동고비, 어치 등, 여러 새들의 생김새와 소리를 모두 알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그렇다면 나는 새들을 더 깊이 사랑할 거 같다. 하나의 화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면서, 이건 플루트, 저건 오보에 그리고 바순 소리까지 모두 구별하고 들을 수 있다면, 음악을 훨씬 더 많이 이해하고, 더 깊은 감동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노력하지 않는 나를 뭐라 할 수는 없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대신 마음을 열고, 느끼고, 한참을 바라보고, 그러고 싶다.

봄이 오고 있는 이 공원의 벤치에 앉아, 가만히 있어 본다.

하늘을 날던 새가 내가 움직이지 않는 물체인 줄 알고 가까이 다가와, 그의 생김새와 소리를 직접 알려줄지는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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