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ne Anne
Jun 26. 2020
족제비를 닮은 사람.
족제비(Weasel) : 교활(간사)한 사람, 속임수를 쓰는 사람.
한국에 있는 언니랑 통화를 했다.
언니가 조카 안경 때문에 안과를 찾았다가 너무 불친절한 의사를 만났다고 했다. 진료가 끝나고 바로 주치의를 바꿨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의사가 족제비를 닮았다고 했다.
예전에 직장을 다닐 때 선임 언니가 다른 팀 팀장을 대개 싫어했었다. 족제비를 닮았다고 했다.
나는 족제비를 실제로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족제비를 닮았다는 사람의 인상은 대충 그려진다.
나는 그 회사를 거의 십 년 동안 다녔다. 나의 첫 직장이자 지금까지 마지막 직장이다.
내가 회사를 나오기 몇 년 전, 족제비를 닮았다던 그 팀장은 결국 회사에서 잘렸다. 바람을 피운 걸 회사 상사에게 들켰기 때문이다. 회사 관련한 행사에서 아마 같이 왔던 모양이다. 그리고 행사 준비도 미흡했던 것 같다.
며칠 후, 누군가에게 얻어맞았는지 멍이 든 얼굴을 가리기 위해 양복에 야구모자를 쓰고 회사를 찾아왔다. 먹고살기 위해 회사에서 관리하는 대리점이라도 내어달라고 부탁을 하러 왔던 것 같다.
요즘은 잘 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한국에서 갖고 온 책이 별로 없어 읽을 책이 없어진 큰 애를 위해 E북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좋아한다. 가끔 혼낼 때가 있어서 "그냥 자",라고 하면 특히 작은 애는 꼭 운다. 혼나서가 아니라 엄마가 책을 안 읽어주는 게 슬퍼서 운다고 한다. 그러면 결국 내 감정이 사그라질 때까지 뭐라 하고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읽어준다. 양쪽에서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리면 멈춘다. 자는 모습을 볼 때면 아기 때도 지금도 예쁘다.
저번 주에 읽어준 책이 "가짜 나무에 가까이 가지 마"라는 책이었다. 공원의 중앙에는 뿌리가 불쑥 튀어나온 오래된 참나무가 있었다. 그곳은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였다. 하지만 그 도시에는 참나무를 베어버리고 3D 프린터로 가짜 나무를 만드는 게 꿈인 시장이 있었다. 관광도시를 만들어 도시를 살리자고 시민들을 꼬들 겼다. 물론 진짜 속내는 따로 있다.
하지만 그 도시에는 특별한 사람이 있었다.
동물들의 구조신청을 듣고 분필을 먹으면 슈퍼우먼으로 변하는 학교 선생님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가짜 나무의 위험을 안다. 진짜 참나무에 사는 수많은 새들과 둥지 속의 아기새들, 뿌리 속 구멍에 사는 토끼와 다른 땅속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 선생님과 어린아이들은 참나무를 지킬 방법을 함께 고민한다.
그런데 선생님은 사람들을 보면 대충 그 사람과 닮은 동물들을 쉽게 떠올린다. 그런데 시장 얼굴을 보고 나서는 도무지 닮은 동물을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마침내 , 시장의 계획이 실패하기 직전에야 선생님은 닮은 동물을 찾아냈다.
그게 바로 족제비였다.
언니가 만난 조카의 안과의사, 전 직장의 팀장, 책 속의 허구의 인물인 시장은 각각의 특징을 가진 인물들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그 사람의 고유한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족제비를 닮았다는 공통된 점 때문인지.
모두가 결말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