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ne Anne
Jun 27. 2020
My First Love.
사랑의 감정을 다시 찾다.
첫사랑과 헤어지고 24년이 지났다.
나는 21살 때 그를 만났다. 두 배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이런 순간이 올 줄은 몰랐다.
어느 날부터 너무나도 생각이 난다.
어느 날 남편이 즐겨보던 드라마를 나도 뒤이어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남자 배우의 입매에 자꾸만 눈이 갔다. 그리고 그 드라마에서의 당돌하면서도 지극한 사랑에, 나는 나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몰래몰래 오래된 추억들을 꺼내보기 시작했다. 가물가물 하지만, 한 두 개씩 추억들이 되살아나고 꿰맞춰졌다.
생애 처음으로 상자에 든 장미꽃을 받았다.
추운 겨울날 떨리던 손가락의 따스함을 기억한다.
비 오는 날,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우산을 펼쳤을 때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우산 속으로 들어왔다. 자신의 우산은 손에 꽉 쥔 채로.
이문세의 <조조할인>은 거리의 음반 리어카에 울려 퍼졌고, 곧 우리의 조조영화도 시작되었다.
나는 시골에서 자랐고, 부산에서 결혼한 17살 많은 큰 언니 집에서 중,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모르는 것들이 많았다. 유명한 의류 브랜드도 몰랐고, 인기 TV 드라마나 가요, 가수들도 잘 몰랐다. 나에게는 힘든 시간들이었다. 나는 많이 어두웠다. 그래서 조금 더 편한 셋째, 넷째 언니가 있는 서울로 왔다. 그런 나를 좋아해 주었다.
그 당시 나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왜 그 사람들이 나를 좋아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지나고 보니 난 그랬다. 동시에 몇 명이 모였다 또 몇 년 동안은 아무도 없었다.
그중에 나는 그 애를 선택했다. 특별한 이상형도 없었고,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나와 잘 맞는 사람이 누구일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사랑도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애가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다. 그래서 그를 선택했다.
내게 첫사랑은 이별의 아픔이 너무 커서 항상 힘들었던 감정이 떠올랐다.
그런데, 처음으로 사랑을 시작할 때가 떠올랐다.
비엔나의 벨베데레 궁전에서 클림트의 <키스>를 직접 본 적이 있다. 남자와 여자의 입맞춤은 아름답고 황홀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딛고 있는 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처음 알게 되었다. 화려한 금박의 장식보다 오히려 나는 그 꽃들을 한참이나 서서 바라보다 왔다.
첫사랑은 그랬다.
나도 그도 아름다웠지만, 대학생 때의 풋풋함이 철 모르던 그 시절의 배경이 들꽃처럼 아름다웠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떠나갔다.
영화 <BLUE JAY>를 봤다.
고등학교 때 어린 커플이었던 주인공들이 우연히 중년의 나이에 그 동네의 마트에서 만난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기에 남자 주인공은 양치를 안 한 이빨을 연신 혀로 굴리었고, 덥수룩한 턱수염을 자꾸만 만져댄다. 그에 비해 여자는 원피스에 비니를 쓴 예쁜 모습이었다.
어색하게 헤어진 후, 주차장에서 다시 만나지만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지 둘 다 모른다. 만나자고 해야 할지 그냥 가야 할지... 결국 남자가 커피를 마시자고 한다."How are you?"를 여러 번 묻고도 다시 어색해 하지만, 조금씩 묻힌 추억들이 되살아나고 둘은 서로에게 물들었던 옛날의 그들로 돌아간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나이를 먹고 그가 나이를 먹더라도 사람은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별의 아픔이 아닌 사랑의 감정을.
사랑을 하고 싶었다.
햇살이 좋은 날에,
아이들이 커서 내 시간이 생기기 시작한 요즘 같은 날에 ,
아침에 마주친 낯선 남자의 미소가 너무나 멋져 보일 때,
그리고 처음 들어보는 사랑 노래가 좋아서 머릿속에서 자꾸만 맴돌 때,
내 속에서 어딘가 자취를 감춰버린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저 편한 남편이 있다.
그런데, 첫사랑이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그 감정이 다시 느껴졌다.
셀레고, 떨리고, 애틋하고, 나른하고, 뭔지 알 수 없이 꿈틀대는 몽롱함 , 때로는 가슴 끝까지 푹푹 빠져드는 헛헛함, 왠지 모를 행복과 슬픔,
그러나 또렷한 이성의 순간들,
새삼스레 그에게 인사를 하고 싶어 졌다.
고마웠다고, 미안했다고 그리고 행복하라고도 좋지만 이 말이 하고 싶다.
그때, 너를 사랑했었다...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