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내가 마주 앉았다. "아호이(안녕)" "아호이(안녕)" 영어에 해당되는 'How are you?'까지 주고받는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녀는 영어를 모르고, 나는 슬로바키아 어를 모른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지그시 바라본다. 그리고 핸드폰을 곁에 둔다. 만반의 준비가 된 것 같다.
그런데, 구글 번역기가 이상한 말들을 한다. 결국 가방에서 종이와 펜을 조용히 꺼내 그림을 그린다. 우리의 그림 또한 아리송하다. 그러다 박장대소를 하고 만다. 단 하나의 단어가, 단 하나의 그림이 우리를 통하게 한다. 그 '통함'의 웃음소리가 어찌나 순수하고 통쾌한지, 마치 우주까지 튕겨졌다 돌아온 듯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보면, 우리의 눈은 우주이다. 바로 앞에 아주 투명한 별이 반짝이며 나만을 보고 있다. 코가 높으니 눈은 더 깊어져 그윽하고, 짙은 푸른빛을 띤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며 자신의 말이 아닌 마음을 쏟아낸다.
우리의 커피는 무척이나 적은 듯하고, 맛은 있다. 커피잔을 비우자마자, 종업원이 다가온다. 그녀가 손쉽게, 그 어려운 주문을 척척 해준다.
그녀는 우리 큰 아이와 같은 반 친구 엄마이다. 그녀의 직업은 특수학교 선생님이다. 아이들 학교 앞에서, 같은 미술학원에서 3년 동안을 눈으로 인사만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오늘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는 둘 다 수줍었다.
아쉽게도 두세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많은 말들은 하지 않았다. 얼마간의 안부 인사, 아이들 학교 얘기, 담임 선생님 얘기, 서로의 빈 시간이 언제인지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는 인사치레 정도를 나누었다
어떤 경우에는 헤어지고 나서도 상처를 주고, 받는 경우가 있다. 마음에도 거울이 있어, 입으로 나간 소리는 잊히고, 각자가 내뱉은 마음의 소리가 뒤늦게 비친다.
그날 우리는 맑고 잔잔한 호수 위에서 유유히 거닐 수가 있었다. 우리의 눈에는 우리만 보였다. 한바탕 시원하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통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열린 문을 조심스레 닫아두었다.
내게는 빼꼼히 문 틈으로 살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헤어지고 나오는 자리는 아쉽기도 하지만, 홀가분하기도 하다. 입 언저리의 근육들은 욱신거리고 눈가의 주름은 잔뜩 잡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