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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nne Sep 23. 2021

화분


몇 년 동안 같은 화분에서 자라는 킹 벤자민을 바라만 보다가, 어제서야  조금 큰 화분을 사 왔다. 어김없이 흐리고 쌀쌀맞아진 9월 날씨에 나도 토라져 버린 건지, 생각만 했지 영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비춰주는 햇살에 마음이 좋아져, 바로 큰 건축자재 판매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집을 분리해서 바닥에 펼쳐놓은 듯한 곳이다. 벽돌, 나무, 타일, 싱크대, 샤워부스, 욕조, 울타리, 자갈, 페인트 등 집을 지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골라서 살 수 있다. 그 한쪽 끝에 화분들과 식물들이 있다.


내가 어제 산 화분은 우리 집에서 제일 큰 화분이다. 예전에는 남편이 작은 화분도 사지 못하게 했다. 기약 없는 삶에  짐을 늘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세월이 벌써 내 손가락을 다 꼽아도 모자라게 되었다. 여전히 아주 비싼 것은 사지 못해도 작은 소비들은 미루지 않으려고 한다. 떠나야 하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애정을 갖고 바라보고, 사용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추가로 좋아 보이는(좀 더 비싼) 독일산 흙도 한 포대 사 왔다. 무거운 화분에 흙 포대를 넣고 품에 안고 와, 현관 앞에 놓아두었다. 좋은 마음도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잠시 난 햇볕이 구름 위로 사라질까, 서둘러 작업을 했다. 그 전에도 우리 집에서 제일 컸던 화분의 나무가 아주 제일 큰 화분으로 옮겨졌다. 아무래도 식물들은 옮겨지면서 몰래 변신하는 것만 같다. 큰 화분에 제법 잘 어울리는 모습이 내 두 눈을 의심케 했다. 이름처럼 '킹' 이 되어 있었다.


오늘 식탁에 앉아 화분을 바라본다.

바깥 날씨는 회색이지만,  푸른 잎들과 흙을 품은 토기 화분은 생생한 모습이다. 내 마음도 흐뭇하다. 원래의 마음과 더해져 좀 더 넓어졌기를 바란다. 아이들도 넓은 엄마 마음에서 저대로 잘 자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제 본 국화가 생각났다. 채도가 낮은 보라색, 하얀색, 갈색 그리고 노란색의 색채를 띠고 있었다. 나의 소소했던 행복이 이미 화분으로 채워졌으니, 새로 노란 국화꽃을  사야겠다는 마음이 올라온다. 소소함도 자주 누리면 그것 또한 사치가 될까? 생각해보다 그냥 접어둔다. 가을에는 왠지 국화가 있어야만 할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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