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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nne Nov 06. 2021

떠나가는 친구에게


중년은 미래를 꿈꾸기도 하고, 과거를 추억하기도 하는 나이이다. 중년의 나는 과거의 녹슨 부분을 잘 닦아 광이 나게 할 수 있다. 그렇게 지나고 보면 모든 과거가 추억이 된다.


한 친구가 한국으로 떠나간다.

내가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언제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러던 그녀가 드디어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떠나가는 그녀도 떠나보내는 나도 마음이 아주 기쁘기만 한 건 아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나는 사고 싶은 것들을 살 수 있었다. 백화점에 가서도 예쁜 옷과 구두를 고를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경제적인 자유와 새 가정을 이룬 나는 이제 행복할 거라 믿었었다.  


일 년마다 국제선을 타고, 면세점에서 쇼핑하고, 몇 번의 휴일이나 여름휴가를 이용해 유럽의 나라들을 여행할 수 있었다. 나와 그녀는 또는 주변의 친구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해 본다. 세상 물정을 모르던 우리는 사랑스러운 아이와 함께 꿈을 키워가던 새댁이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늙어버린 소년은 쉴 수 있는 그루터기가 필요했다. 아직 늙지 않은 그녀지만 마음은 고달픔으로 지쳐 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가 아닌 어리광 부릴 수 있는 가족 품이 필요했다.


나는 그녀가 내가 처음 만났을 때의 그녀이기를 바라본다. 삶의 지혜보다는 당당하면서도 미숙하기도 했던, 아무 걱정 없이 남편을 닦달하기도 하고, 남편 품에서 행복하기도 했던 그 모습이 좋았었다.

아이들의 입에는 젤리를 물리고, '뽀로로' '타요' 틀어주면서 나누던 육아와 낯선 곳에서의 고충은 커피 한 잔과 수다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때의 우리는 아기띠나 유모차를 끌면서도 철없던 앳된 모습들이었다.


자신의 젊음을 줘서라도 남편의 나이를 젊게 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이 참 슬프다. 아이들은 아직도 어린데 우리는 벌써 나이 들어가는 서러움을 알아가는 중이다. 커피 한잔으로 다시 가벼워질 수 있는 무거움이었으면 좋겠다.


그녀에게 주고 싶은 선물은 시간이다.

지금이라는 시간은 얼마 안 있어 우리의 과거가 되고, 한국에서의 삶이 어떠하든 다시 만날 수 있는 우리의 미래 또한 될 수 있다. 그녀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만나 서로에게 잘 남기를 또한 다음을 설레며 기약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곳에서의 삶을 아름답게 떠올려보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바라다보는 추억이 많아지면, 우리도 서서히 노년이 되어갈 것이다.


아침이 오면 해가  뜨고, 달은 다시 차오듯이 나는 그녀의 다가올 안녕을 믿고 싶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미리 인사를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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