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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nne Dec 01. 2021

한기(寒氣)


어둡다! 오후 3시 49분에 태양은 더는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주에 비해 3분이 빨라졌다.  앞으로 일몰은 동지(至)가 될 때까지 더욱  앞당겨질 것이다. 지금은 태양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겨우 주변을 비춰주는 한 자루의 초처럼 약한 빛으로 잠시 머물다 속히 가 버린다. 검고 으스스하고 희뿌연 스산한 어두움이 왔다.

이곳의 겨울은 뱀파이어에게 어울린다. 칙칙한 겨울잠바를 입은 사람들 그리고 날씨마저 이러니, 눈앞에 뱀파이어가 서 있다 하여도 분간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여름 동안 남자든 여자든 최소한의 옷만 걸치고 피부를 아무리 태워도 소용이 없다. 지금은 희고 창백한 핏기 없는 피부로 다시 돌아온다.  마늘, 파, 양파를 곳곳에 놓아두고 십자가를 걸어둔다. 아니 그보다는 비타민D를 섭취하는 게 도움이 되겠다. 도로에는 몇몇 가로등만이 겨우 비추고 그 흔한 편의점이나 구멍가게 불빛도 없다. 큰 마트는 오직 마트만을 위한 장소나 쇼핑몰에만 있다. 그래서 거리는 어둡다. 어떤 집들은 조명마저도 어둡다. 밖에서 보면 대부분의 한국사람이 사는 집들은 표가 난다. 밝은 형광등 불빛이 새어 나오기 때문이다. 영화도 희뿌옇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아주 쨍하다. 그런 불빛이 그리운 계절이다. 밤이 아주 길어졌다.




뭐가 그리 바쁘다고, 아니 너무나도 확한 시간을 알고 있는 나무들은 자신의 몸에 나뭇잎 하나 거치지 않고 우두커니 검게 서 있다.

그리고 두려움에 밖을 응시하고 있다.

자신에게조차 줄 수 있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만을 움켜잡고서는 저 높이 뻗어있는 나뭇가지로는 올라가지를 못한다.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혹독한 계절이 오고 있다.

이웃한 친구들이 많아도 나와 같이 벌거벗은 채로, 다가오는 어둠을 지켜보고 서 있다. 옆에 있으나 그저 어찌하여 옆에 있을 뿐,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나의 몫이다. 나무 나무면서도  속수무책이다.


생기를 잃어버린 나무,

나무는 나무를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잊어버리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도 환하고 찬란한 시절이 있었는지를 묻고 있다. 

물기가 말라버린 나는 눈물을 흘릴 수 없다. 울고 나서의  널브러진 마음을 주워 담을 힘이 없다.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다.

지금은 그런 게 필요하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마치 겉으로는 죽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버텨내고 버텨야 하는 계절이 왔다.  나  시들어가는  중이다.






( 흑백사진이 아닙니다. 흐리고 우중충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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