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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nne May 09. 2022

중년의 시간

나는 이제 중년입니다.


나는 아직 젊은것 같은데, 얘기하다 보면 웬만하면 20년이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애들 방학 동안 자기 전에 누워서 각자의 책을 보고 있었다. " 엄마, 그 책은 언제 샀어?" 하고 아이가 묻길래, 1996년도 즈음이 생각났다. 동네 서점에서 세계 단편집 시리즈를 몇 권 샀었다. 당시 좋아했던 친구에게 두, 세 권을 주고, 나머지 한 권을 간직하다 이제야 읽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샀던 옷들이 있다. 몇 번의 유행과 출산의 과정이 지난 지도 오래되었지만 가끔 꺼내 입게 된다.

그때 그 시기에 운이 맞아 결혼한 한 남자와도 어느덧 연애 때부터 따지면 20년이 되어 간다.

그리고 2002년도에 라식수술을  했으니 역시 20년이 된다. 모두 나의 20대 시절이었다.


한동안 셀카를 엄청 많이 찍었다. 그리고 더는 젊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중년의 이미지가 사진에 박혀,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어릴 적 내가 우리 엄마를 봤던 것처럼, 아이들도 나를 젊지 않은 중년의 여성으로 보고 있었다. 어리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조금씩 자라나, 엄마의 핸드폰에 반응을 하지 않는다. 어느덧 나는 혼자서 셀카를 찍고, 마음이 가 닿는 자연을, 나무나 꽃 그리고 산과 하늘을 찍고 있었다.


나는 다시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내가 태어난 가정이 세상의 전부였고 출발점이었다면, 이제는 그와 다른 두 번째 출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곳에 계속 머무르기에는 나는 아직, 너무 작다.

나의 유년기, 십 대와 이십 대 그리고 삼십 대를 돌아보았다. 내가 나에게 잘못했던 일들, 내가 남에게 잘못했던 일들 그리고 내 잘못이 아니었지만 나를 힘들게 했던 일들을 회상해 보았다. 혼자서 되새김질해 가면서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건 남겨놓았다. 이 시간이 내게는 선물이었다. 비로소 나를 옭아매었던 끈들이 풀리고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앞으로 나는 43년을 더 살고 싶다. 내 아이들이 지금의 나보다 좀 더 중년의 시간을 보낼 때까지 살아있고 싶다. 그때가 되면 나는 웬만하면 20년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60, 70 아니 80년이라는 말을 달고 살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맞지 않는다며 힘들어하던 나는, 그와 함께할 노년의 시간이 남았음을 안다. 언젠가 다시 마음이 깨어나, 그와의 두 번째 사랑을 꿈꾼다.


나의 아흔 살 내외의 부모님은 힘든 농사를 매년 짓고 계시고, 올해 칠순인 시어머니는 목욕탕에서 몇십 년째 일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건강이라는 축복이 주어졌다. 완벽하게 좋은 것도 완벽하게 나쁜 것도 없는 것 같다. 나의 삶에 순응하고, 소중한 가치들에 눈을 두면서 값싸지만 작은 기쁨들을 느끼며 살고 싶다.


조각가 최종태는 인류 조각사에 단지 아름다운 작품들은 많지만  <반가사유상>처럼 착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내 얼굴에 주름이 많아지더라도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올라와서 꾸며주면, 중년에 어울리는 미(美)가 될 것 같다.


백여 걸음 넘어야지만 다 보이는 큰 나무를 바라보고, 웅크리고 앉아서  꽃봉오리도 들여다본다. 새벽 공기를 타고 넘어오는 새소리를 알아채고, 내 앞이라 모든 걸 편안히 내어놓는 친구의 목소리도 듣는다.


이제 나는 두 번째 삶의 출발선에서 천천히 발걸음을 떼어본다. 유행을 따르지 않는 꾸준한 22년의 세월이 축적되면, 내가 정한 나의 마지막 중년을 자축하고 싶다.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조금 쉰다는 게 오래 게으름을 부렸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모르는 혼자만의 보물 장소인 듯,

무리 속에 있다가도 피식 웃음이 나는 곳,

다시  발걸음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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