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친한 사람도 때가 되면 떠나고, 아무리 미워하는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 아무렇지 않게 되듯이, 지금의 내 마음을 괴롭히지 말자. 그대로 놔두도록 하자. 외로워하지도, 미워하지도, 힘들어하지도... 그저 눈길을 걸으며 나의 발소리를 듣자! 어느 순간, 다시 나의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 세 번째로 친구와 이별을 하고 왔다. 2018년 12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석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세 명의 친구를 다른 지역으로 또는 한국으로 떠나보냈다. 그중에는 여기 있는 8년 동안 처음 사귄 친구도 있고, 아주 친하다고는 생각 안 했지만 떠나간 빈자리가 너무 크게 다가오는 친구도 있다. 나머지 한 명은 몇 년 동안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았지만, 스쳐 지나가는 길 위에서, 운전 중에 잠깐 마주쳐도 반가운 친구였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으로 만나고 왔다.
남아있는 한 사람, 바로 나! 괜찮을 줄 알았다. 만나지 않더라도 그저 이 도시 어딘가에 살고 있고, 각자의 생활 테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의지가 되었고, 힘이 되었었는데.
그 빈자리가 크다. 많이 외롭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사람이 떠나갔다. 이젠 친구가 아닌 아는 사람이 되었다. 우정 또한 사랑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샘내고, 질투하고, 그러다 서로의 서운했던 감정을 얘기하고, 그 마음을 몰라준다고 미워하다 아예 떠나갔다. 그 사람은 내게 우정을 원했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그 사람의 감정은 사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파해도 섣불리 다가갈 수가 없었다. 오히려 없던 상처가 생겼고, 있던 상처는 더 깊어졌다. 우정을 나누기에는 우리는 각자 다른 취향의 사람들이었다. 나는 어쩌다가 가끔 만나도 친하다 느꼈고, 내 공간과 내 사람들을 전부 다 공유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공간을 자주 오픈했으며 친구들의 이야기도 공유했다. 나눠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나에게 관심과 우정을 바랐다.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이 곳의 겨울 풍경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가을부터 하늘은 뿌옇게 흐려있다. 내가 해를 본 날이 얼마였던가? 해는 늦게 뜨고 밤은 일찍 찾아온다. 하지만 낮이 되어도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낮이어도 해가 없고 밤이어도 눈이 내린 날은 오히려 희뿌연 게 꼭 낮인 거 같다. 거리에는 한국처럼 가게도 없고 당연히 밝은 네온사인도 없다. 인공적인 환한 빛이라도 있으면 나의 시린 마음을 열어 쬐일텐데... 가로등마저도 어두운 이곳의 거리는 벌써 몇 개월째 음침함이 밤낮으로 함께 한다.
그 빈자리에 또다시 새로운 친구를 넣고 싶지는 않다. 커피를 홀짝이며 나누던 수다의 달콤함은 이제 나에겐 쓰디쓴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의 찌꺼기처럼, 씁쓸하다.
누군가를 붙잡고 우리는 서로의 말들을 쏟아내기에 바쁘다. 하지만 아무도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지는 않는다. 그러다 시간이 다하면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일어선다.
또다시 나 혼자가 되는 순간이 찾아올 뿐이다. 그러면, 난 또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는 이제 나 혼자만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야 할 것을 안다. 그럴 바엔 처음부터 혼자인 게 낫다. 그래서, 어제오늘은 집 옆에 있는 공원을 찾았다. 어제는 오랜만에 맑고 푸른 햇살로 가득했던 곳인데, 오늘은 눈이 내리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잠시 녹은 눈 틈에는 푸르른 잔디가 보였고, 작은 새들은 지저귀며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는 오히려 따뜻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자연이었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힘이 들 때, 사람에게서가 아닌, 자연에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또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생각이 명료해진다.
난 요즘 느낀다.
똑같은 자연을 보더라도사람마다 느끼는 것도 다르고, 또 그것을 못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전에는 내가 느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에게도 똑같이 공유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젠 안다. 그 느낌은 나만의 것이라는 걸, 그걸 말하더라도 공감받지 못한다는 걸.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렇게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내가 받은 특혜라는 걸 말이다. 그리고, 감사함을 느낀다. 당분간은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