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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May 28. 2021

무계획 여행자의 제주에서의 하루

1. 제주의 아침, 어느덧 제주살이 17일 차다. 2주만 하고 돌아가려 했던 나의 쉼은 17일로 늘어났고, 한 달을 채울 예정이다. 

2. 매일매일 목적지를 정한다. 그날의 날씨와 기후에 맞게 갈 수 있는 곳을 정하고 움직인다. 함께 다니고 있는 언니의 차를 타고, 목적지를 간 뒤에 각자 책을 읽기도 멍을 때리기도 하고. 함께 걷기도 하고 먹고 커피를 마시며 끝없는 수다를 나누기도 한다. 어찌 되었던, 혹시나 잘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라는 걱정을 크게 한 편은 아니다. 교만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적응을 잘하는 편이기에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긴 했다.) 잠깐의 걱정을 했지만, 역시나 페이스를 맞춰 잘 다니고 있다. 

3. 예상치 못한 만남, 예상치 못한 대화, 예상치 못한 날씨의 연속이다. 하루 24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그릴 수 있고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자유가 주어진 것이 낯설고도 어색했는데, 이제는 적응하고 있다. 이 삶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마음껏 즐기고 누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겠다! 

4. 매일 같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주제가 참 다채롭다. 나의 이야기가 너의 이야기와 맞물려 흘러갈 때, 사람 사는 게 참 다 비슷하구나 싶으면서도 각자 이겨내는 방법, 그 시간을 견디는 방법은 참 다르구나, 문제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자세도 다르구나 하는 것을 배운다. 같은 문제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나를 괴롭게 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늘 하던 익숙한 생각의 흐름, 그러니까 '문제-> 고쳐야지'의 흐름에서 '일어난 일-> 그럴 수도 있는 일' 로써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차이는 굉장히 큰 것 같다, 떠나지 못했을 때 느꼈던 삶의 무게들이 떠나서 바라보니 누군가의 문제였다로 끝나기보다는 그 안에서 반응한 '나 자신'이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늘 내가 옳지 않았음을 깨닫고 앞으로는 같은 상황에서라도 다른 선택들을 하자는 배움을 얻었다. 그러나 그때의 내가 참 부족한 게 많았지만 그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버티고 견디며 아프고 힘들었다는 것조차도 함께 인정하고 바라보니 이 시간을 조금 더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 그랬다. 쉼이 익숙해질 때까지 누리고 나면 지겨워서라도 무엇인가를 하게 된다고. 하하하. 신박한 생각이다. 후회 없이 누려야겠다.

5. 나와 다른 사람들, 그리고 나보다 인생을 조금 더 앞서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유익한지를 배워간다. 늘 하던 생각들, 고여있는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이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느낀다. 시야가 넓어진다고 해야 할까. 여행이 주는 유익은 참 많다. 늘 익숙한 상황과 환경, 사람들에 둘러싸여 보지 못하던 나의 마음과 생각들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어서 참 좋다. 무엇보다 나의 겉치레가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대화는 늘 기억에 남는다. 함께 동행하는 언니와 매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다 나열할 수 없지만 나를 돌아보게 되고 내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복잡했던 마음이 아주 조금씩은 가라앉고 있다. 정리가 되어가는 걸까? 

6. 그래서인지 잠이 늘었다. 평소 6시간만 자면 충분하고. 6시만 되면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자동으로 눈이 떠지는데 기어이 다시 눈을 감기를 선택한다. 사실 일어나도 하루의 일정을 소화하는데 크게 피곤을 느끼지 않는데 그냥 일어나기 귀찮아서다. 더 격렬히 쉬고 싶다는 마음에 충실한다고 할까. 그런데 내 몸을 보니 그래서는 안 되겠다. 활동량은 이전보다 적고 먹는 것은 많은데 거기다가 잠도 많이 자니 몸이 무너지고 있다. 돌아가기까지 약 2주의 시간이 남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는 이 시간은 조금 확보할 필요가 있겠다. 

7. 너무 많은 정보들이 한꺼번에 들어오니 무엇을 먼저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많은 얘기를 듣고 나누는데 가족, 일, 인생, 성격 등 너무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가서 말이다. 하나씩 정리를 해봐야겠다. 한 가지 감사한 것은 내가 있고 있는 것은 선물같이 주어진 시간이라는 것,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아는 분이 허락한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감사를 잃어버리는 순간 삶은 불행으로 가득 차다고 한다. 이곳에서 하루하루의 감사를 찾아가야겠다. 돌아가서도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여행에서만 행복한 '나'가 아니라, 그 힘으로 일상에서도 행복한 '나'로 살아갈 수 있도록. 

8; 비 오는 날의 아침, 모두 힘겹게 출근길에 올랐을 것 같다. 서울은 천둥과 번개가 치는 폭우가 쏟아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모두 무사 출근했으면. 지금 제주도 비가 오는데, 분명 해가 뜬다고 했다. 해가 뜰 것을 믿어야지. 오늘은 바닷가 앞에서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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