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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Aug 01. 2021

포기도 선택이다.

제주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먹고사는 일'을 고민하다가 웨딩 사진 전문 스튜디오의 리허설 촬영 보조로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을 했다. 평소에 사진을 좋아하고, 기록을 좋아하기도 해서 우스갯소리로 사진작가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그래도 내 실력이 어느 수준인지 궁금했고. 그래도 저명한 곳이라서 그런 대표님이 합격을 하셨다면, 그래도 나에게도 '사진에 소질이 어느 정도는 있구나'라는 정도로는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많은 칭찬과 함께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합격을 통보받고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당장 굶어 죽지 않게 또 좋은 기회를 이렇게 얻을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했고, 별 것 아니라고 했던 내가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의 이미지라는 것도 감사했다. 그런데 이제 붙고 나니까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일단 붙고 나서 할지 말지 결정하라는 말에 지원은 했는데, '지금 나의 최선이 정말 이건가?'라고 스스로 물었다. 

2주 전 화요일에 합격 결과를 받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고민을 하는데. 아무래도 정말 이게 지금 내가 가야 할 길인가 싶었다. 이전에 하던 에디터 업무를 조금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인터뷰하는 일과 사진을 담는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는데. 다시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흔히 말하는 '따까리'역할을 해야 하는 웨딩 스튜디오에서 또 새로운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는 게 정말 나의 최선일까. 

ENFP라서 쉽게 흥미를 느끼고 쉽게 흥미를 잃어버린다고 하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1년 동안 즐겁게 일했던 업무를 더욱더 배워보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또 조금은 문턱이 낮은 스튜디오 업계로 들어가 거기서 2년, 3년 경력을 쌓아가는 것을 선택하는 게 과연 나의 최선일까 싶었고, 고민 끝에 그 길을 내려놓게 되었다. 

나의 강점이자 약점은, 하나에 꽂히면 지속적으로 하는 것인데 그 지속성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래도, 그래도. 쉽게 얻을수록, 쉽게 버릴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인고의 시간을 가지면서 조금은 느리게 가더라도 내 실력을 쌓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고민 끝에 이번 여름까지는 나에게 멈춤의 시간을 허락하기로 하고 그동안 더 해보고 싶었던 '에세이 만들기'와 '영상 편집 배우기'를 해보려고 한다. '인디자인, 그리고 영상 편집 도구' 

일을 하면서 할 수 있지만 9시간 동안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고 구르고 돈을 벌다 보면, 또 거기에 집중하느라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이 뒷전이 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두 개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 나는 올 8월 많은 것을 목표로 두지 않고 제주여행의 기록으로 에세이를 만드는 것과 브이로그용 촬영을 지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어진 기회를 하기로 선택하는 것 말고,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두려워서 겁을 먹었나 스스로 묻기도 하고, 더 놀고 싶고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에 일을 하지 않을 핑계를 대는 것인가 묻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그건 아니다. 그냥 정말 지금 이 시간을 조금 더 누리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하지 않으면 후회할만한 일에 더 시간을 쓰기로 한 것이다. 빠르게 가지 않고, 느리게 가더라도 방향이 맞다면 그 길을 선택해서 걸어가는 게 더욱더 먼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모든 선택을 하고 포기를 하는 과정에서 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 내 삶을 가장 잘 살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일 것이다. 내 삶을 방치하지 않고 이미 시작된 8월은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부지런히. 나태하고 늘어진 마음을 다시 세우고 해야 할 일들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야겠다. 몸과 마음을 다시 다 잡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포기도 선택이다. 포기도 용기다. 오늘의 이 용기가 나에게 새로운 시작을 또 열어줄 것이라 믿는다. 버린 것에 미련 없이 주어진 시간을 잘 살아내는 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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