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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 10주 표류기 프롤로그

2016년생 아들의 우당탕탕 스쿨링 생활

by 수연

멜버른으로 떠는 이유가 분명했다. 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10주 동안 아이는 멜버른의 공립학교에 다닐 예정이다. 낯선 환경에서 스스로 부딪히고,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문화를 배워갈 것이다. 나는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 단순히 영어를 배우는 것을 넘어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 속에서 성장해 가는 아이의 모습을 기록할 것이다.




왜 호주일까?


나는 많고도 많은 나라 중 왜 하필 호주를였을까? 직장에서 하루 종일 기계처럼 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늘 행복했던 건 아니었다. 매일 몇 번씩 후회를 쌓고 한숨을 삼키며 살아온 바쁜 일상 속에서 뜻밖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3개월의 육아휴직이 허락되었다. 10년 동안 나를 잃어버린 시간 속에 다시 한번 찬란하게 빛나는 일상을 찾아보라는 듯이, 그 순간 반짝이는 햇살처럼 호주가 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현실적으로 치앙마이, 발리를 선택지에 올려놓고 밤낮으로 검색했다. 아이와 함께 무엇을 경험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려봤다. 그런데 문득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한 마디


"이 기회가 다시 올까? 후회 없는 선택을 해야 해"


그렇게 마음속 나침반은 호주를 가리켰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지금까지 나에게 여행은 그저 큰맘 먹고사는 비싼 옷과 가전을 사는 것과 같았다. 다음 날 쌓여 있을 이메일과 업무를 걱정하며 관광지의 포토스폿을 돌고 일탈의 즐거움을 말이 통하지 않는 불편함으로 상쇄시켜 버렸다.


대학교 시절 우연히 읽었던 오소희 작가의 '바람이 우리를 데라다 주겠지'

그 책은 내게 아이와 여행하는 모습에 대한 로망을 심어줬다. "아이를 낳으면 나도 작가님처럼 아이와 둘이 떠나리라" 하지만 육아의 현실은 책처럼 낭만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고되었다. 세 살 아이와 터키 여행을 꿈꿨지만, 그저 꿈으로 끝났다. 아이를 데리고 떠날 용기도, 나 자신을 믿는 힘도 부족하여 두려웠다.


만약 나 자신을 믿고 세 살짜리 아이의 두 손을 잡고 터키로 배냥여행을 떠났다면 우리의 모습은 조금 달라져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두 번째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말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고 하면 짧은 3개월 간의 공백을 회사에서 받아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하나씩 인수인계 담당자가 정해지면서 내가 돌아왔을 때 책상이 사라지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팀장님이 안전하고 행복한 육아휴직을 보내기 위해서는 팀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메일을 보며, 팀장님의 한마디가 내 마음을 덜컥 울렸다. 각자의 업무로 충분히 바쁠 텐데 나의 일을 맡아 주는 팀원들을 보며 감사한 마음이 물결처럼 빌려왔다.


그래, 세상은 이러한 용기를 내고 자신만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응원한다. 그럼 내가 그 이야기를 써볼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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