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아빠와 단둘이 여행하기

2018.07.24

by 느림주의자

어젯밤, 우리는 적지 않은 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들어갔다. 아침 일찍 아빠를 깨우면서 오늘은 일정이 많아서 내가 운전을 할 테니 아빠는 눈을 좀 붙이라는 말을 전했지만 그는 고우리 섬으로 올라가는 2시간 내내 하늘 사진을 찍고 하늘을 바라봤다. 여행에서의 나처럼,


두 시간 동안의 오키나와는 찬란했다. 비가 오다가도 오분이 채 안돼 그쳤고,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해 날씨를 걱정할 무렵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먹구름은 사라지곤 했다. 두 시간가량 하늘은 본 그는 가늠할 수 없는 날씨라며 어이가 없다고 했다. 고우리 섬에 도착하기 전 또다시 몰려오는 먹구름에 쓸데없는 걱정도 같이 몰려왔지만 그는 가늠할 수 없는 하늘이니까 너무 걱정 말자며 저 멀리 보이는 푸른 하늘을 가리켰다. 고우리에 도착하자 정말 나의 걱정은 쓸데없었다는 냥 그거 가르쳤던 푸른 하늘 아래 있었다. 드디어 보이는 파란 하늘이었다. 그가 푸른 하늘 아래서 아주 밝게 웃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사진 찍을 때마다 웃는 일이 힘들다던 그가 엄마와의 영상통화로 웃었다. 원래 잘 웃던 사람처럼, 이런 모습을 우리 엄마가 알고 있을까 싶었다.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며 밝게 웃는 그를 실컷 담아내고 내가 딱 일주일 전 사진을 찍었던 그 자리에서 그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물이 간절했다. 한국에 가기 하루 전날인 오늘 드디어 날이 맑았으니 그에게 바닷속의 오키나와를 보여주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세소코 비치로 향했다. 비장한 표정을 했던 그는 스노클링을 한지 오분이 채 되지 않아 장비를 내려놓으려 했다. 도대체 숨을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게 답변이었다. 여러 번 설명을 하다 왜 이걸 못하느냐며 나도 모르게 타박을 하고 있었고 그는 ‘아빠는 처음 해보잖아’라고 했다. 그 한마디에 미안한 마음과 창피함이 밀려왔지만 이내 내 마음을 숨기고 그에게 차근차근 알려줬고, 이제는 알겠다고 아이처럼 웃는 그를 보니 순식간에 코 끝이 찡해졌다. 세소코 비치의 바다는 생각보다 훨씬 아기자기했다. 이곳은 물높이가 일정치 않았고 조금은 위험했지만 우리가 볼 수 있던 생명체들의 종류도 다양했다. 물속에서 숨쉬기를 두려워하는 그가 이 이쁜 생명체들을 보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아이 같은 모습으로 그 속을 유영하니 마음이 너무나 흐뭇했다. 그렇게 몇 분을 물속에 있었을까, 이제야 스노클링에 눈이 떠진 그를 위해 구명조끼 렌털 시간을 늘렸고, 나도 다시 물속에 들어갔다.

하지만 잠시 후 깊은 물속으로 들어간 것도 아닌데 괜스레 싸한 느낌이 들어 물 밖으로 나왔다. 그는 숨 쉬는 방법을 터득하더니 어린아이 마냥 헤엄을 쳤다. ‘수연아 물고기 여기 엄청 많다! 색이 너무 이뻐 너도 이리 와바.’라는 말을 연신하며 말이다. 그런 그에게 가려던 찰나 피부가 이상함을 느꼈고, 곧바로 래시가드를 올려 팔을 봤더니 내 팔이 나무같이 울퉁불퉁했다. 참을 수 없이 가려웠고 볼 수 없이 징그러웠다. 급하게 그를 불렀고 그는 토끼눈을 하며 해파리에 물린 게 아니냐며 얼른 옷을 벗고 샤워를 하라며 날 재촉했다. 샤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팔은 그대로였고, 우리 부녀를 본 주차장 아저씨는 내게 바닷속 동물의 사진과 일본어로 된 글이 적혀있는 팻말을 보여주며 이 생물들을 본 적 있느냐고 묻는 듯했다. 나는 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그 아저씨는 일본말로 중얼대더니 내게 따라오라고 했다. 무언가 묻힌 솜을 내 팔에 마구 문질렀다. 긁지도 않았고 상처도 없던 팔이 너무너무 따갑고 쓰라렸다. 이내 내 팔을 괜찮아졌고 그는 도망치듯 이 바다를 떠나 자고 했다.

‘아빠 처음으로 스노클링 했는데 나 때문에 제대로 보지도 못해서 어떡해~’라고 말을 건네는 내게 그는 그게 문제냐며 괜찮다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며 괜찮아진 내 팔을 보더니 그제야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제일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던 아메리칸 빌리지에 왔다. 그는 이 식당의 테라스도 좋고 저 식당의 테라스도 좋은 것 같다며 여기저기를 둘러보더니 그래도 아직 낮이라 더우니까 안으로 들어가고 저녁에 밖에서 먹자는 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듯 나를 따라왔다. 못 먹는 게 없다는 그는 아무거나 시키라더니 부리또에 들어있는 밥이 냄새가 나서 못 먹겠다며 밥을 절반 이상을 남겼다. 외국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내가 누굴 닮았나 했더니 여행을 시작한 지 몇 년이 된 이제야 알아버렸다. 밥을 다 먹으면 해가 져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멀었다는 듯 쨍쨍한 하늘을 보니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내일이 되면 한국에 가는데 이제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일을 그에게 말할 참이었다. 무뚝뚝하고 표현이 적은 우리 아빠는 내가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편지를 쓰자는 말에 대해서 크게 놀라지 않았다. 아마 내가 외국에서 가족들에게 가끔씩 편지를 써서 일 거라고 생각했고, 또 이참에 나를 핑계 삼아 가족들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써보자라는 마음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엄마에게 쓴 편지를 흘끗 봤다가 겨우 눈물을 참았다. ‘여보 나는 이곳에 와서 오늘 수연이 덕에 새로운 일을 해봤어. 다음에 우리 네 식구 같이 오자. 대신 수연이 없이는 안될 거 같아’


이른 오후에 있었던 사고를 생각하며 네 팔이 끔찍했었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무슨 딸한테 그런 말을 하냐고 했지만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미서부의 느낌을 좋아하는 그에게 캘리포니아 곰이 그려진 멋진 창이 있는 모자를 사줬고 그는 내게 파란 오키나와 글씨가 써져있는 이쁜 티셔츠를 사줬다. 심하게 쨍했던 해가 지고 별이 떠있는 어두운 밤이 찾아왔다. 그가 앉고 싶어 했던 테라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음식을 먹었다. 밤, 음식, 여행하면 꼭 있어야 할 맥주는 빼두고 말이다. 우리는 이제는 안 되겠다고 하며 가위바위보를 하기로 했다. 이기는 사람은 맥주를 마시고 지는 사람은 운전을 하는 전제하에. 단판을 지을 거냐 세 판을 할 거냐는 나의 대답에 그는 단판을 택하고 단판을 택한 그는 단판만에 져버렸다. 허탈한 웃음을 짓던 그는 그제야 세 판으로 하면 안 되냐고 했지만 나는 그의 말에 별 대꾸를 하지 않고 맥주를 시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금 타코야끼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시원한 생맥주를 보니 함박웃음이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때마침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내게는 정말 괜찮다고 스노클링이 중요하냐던 그는 엄마에게 얘 때문에 제대로 놀지도 못했다며 투덜거렸고, 거기 있으니까 좋냐는 엄마의 말에 된장찌개랑 김치가 먹고 싶다고 한번 더 투덜거렸으며, 가위바위보에 져서 더워 죽겠는데 생맥주도 못 마시고 안주만 먹는다고 한번 더 투덜거렸다. 나는 그의 그 투덜거림들이 엄마를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지 않은 저녁이자 오키나와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숙소에 도착했지만 그는 내게 어디 또 안 나가냐는 말을 했다. 정해둔 식당은 없었지만 둘러보고 괜찮은 곳으로 들어가자는 나의 말에 그는 말없이 신발을 신으려 했다. 우리는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제일 좋은 냄새가 나는 식당에 들어갔고 나는 물론 그도 이 여행에서 제일 비싼 저녁을 먹었다. 일인용 숯불 화로가 나오는 그곳은 딱 그가 좋아할 만한 식당이었고, 현지에선 유명한 가게인지 tv 출연을 많이 한 듯 보였다. 꽤 비싼 가격의 고기가 정말 조금씩 나왔지만 그는 내게 먹고 싶으면 더 시키라는 말을 끝없이 했다. 내 여행을 통틀어 제일 큰돈을 쓴 한 끼였다. 그는 내가 이박삼일 여행하려 이곳에 얼마를 가져왔는지 아냐고 말했다. 얼마 안 가져온 거 아니냐는 나의 말에 액수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끝까지 안 온다고 무슨 여행이냐고 하더니 오길 잘했지?라는 나의 물음에 흘리듯 그러게~라는 대답을 했다.


술에 취해 셀카봉을 사 온 그를 보며 울컥했던 밤이 생각났다. 코끝이 찡했지만 운동화 끈을 묶으며 촉촉해진 눈가를 숨겼다. 끝자락이 되자 한국은 더워서라는 핑계를 돌아가기 싫다는 말을 하는 그를 보니 이 여행 고집부려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처럼, 그렇게 오늘이 마지막인 듯 있는 힘껏 행복해하며 여행을 해왔다. 여행을 하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일을 응원한다는 지인들을 보면서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응원을 받으면서 내가 잘 살아왔음도 느꼈다. 도대체 왜 대단한지 모르겠는 세 번째 버킷리스트가 이뤄졌다. 그렇게 어제 아빠와의 여행이 끝났다.


기분 탓일지 모르겠는데 오늘 아빠에게 세 번이나 전화가 왔다. 별 시답지 않은 이유들로, 고맙다. 이젠 내게 조금은 편하게 다가와주는 아빠에게, 한국이 너무 더워 일본에서 오지 말걸 그랬다는 아빠를 보면서 괜스레 마음 한편이 울컥. 이제 아빠의 여권에 도장이 많이 찍히면 좋겠다. 오늘 하루 종일 머지않은 미래에 가족 다 함께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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