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어린아이의 마음 같은 단순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09.2019

by 느림주의자

명절의 내용이 담긴 글을 쓰고 싶던 찰나 아주 좋은 글귀가 생각이 났었는데 쓸 때가 되어 다시금 그 글귀를 떠올리려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역시 글을 떠오르는 순간 바로 적어 내리는 게 가장 좋다.

내게는 꽤 시끄럽다가 조용하기도 하고 온갖 마음이 들뜨는 9월. 이 계절이 되면 나의 마음엔 중간이 없다.


어렸을 때 9월이 좋았던 가장 큰 이유는 내 생일이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우리 엄마는 어릴 적 내 생일이 되면 직접 만든 음식을 차려놓고 내 친구들을 불러 생일잔치를 해줬고 그 보답으로 나는 온갖 종류의 문구세트를 선물로 받았다. 포장지를 뜯으면 색만 다른 연필과 지우개 노트들 뿐이었지만 하나하나 포장지에 싸인 선물을 받았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어린이가 되는 날이었다. 평소 잘 먹지 못하는 달콤한 케이크도 먹을 수 있었고 왠지 엄마에게 조금은 덜 혼나는 거 같기도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때깔 나는 부잣집에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일 년에 단 한번 있는 생일날엔 출산 통이 항상 있었던 우리 엄마가 이 음식 저 음식 다 해서 차려주신 잔치상도 받아왔고 평소 눈독 들였던 인형 하나 장난감 하나는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어린 시절의 9월은 어느 정도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학교를 안 가도 되는 추석 연휴가 있기 때문이었다. 시골에 가면 설날만큼은 아니지만 어른들에게 받는 용돈도 쏠쏠했고 할머니 집에 있는 강아지랑 노는 것도 너무 좋았다. 명절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그저 학교를 안 가도 된다는 생각에 마냥 명절을 기다렸던 것 같다. 매번 휴일 마지막 날이 되면 졸린 눈을 비비며 밀린 일기를 쓰고 엄마한테 혼쭐이 났지만 그래도 별수 없었다. 휴일 동안 꼬박꼬박 일기를 쓴다는 건 지금 매일 운동을 하는 것과 같은 굳은 다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끔 어린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는 참 생각이 많다는 느낌이 든다. 그냥 좋은 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건데 왜 지금의 나는 싫어하는 것을 좋아할지 좋아하는 것을 그만둘지 고민하는지,


어릴 적 꽤 좋기만 했던 9월이 되면 지금의 나는 마음이 뒤죽박죽 싱숭생숭해진다. 특별했으면 좋겠는 생일이 되면 평소와 같은 일들이 연속된다. 너무 평소와 같아서 ‘생일인데 왜 이래’ 싶기도 하고 더 많은 축하를 받았으면 좋겠다 싶다가 내 생일을 기억해주지 못한 친구를 보며 조금은 속상하기도 했다가 나도 살다 보면 누군가의 생일을 기억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에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이들에게 더 고마운 마음을 느끼기도 한다. 또 가족들에게 선물을 받고 축하를 받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엄마라는 한 여성이 누군가를 몸속에 정말 귀하게 품고 품어 생리통보다 몇 배는 더한 고통을 이겨내 결국 생명체가 태어나게 해 주고 또 그 생명체를 길러내는 일이 얼마나 고귀한 일이며, 많은 눈물과 노력과 사랑이 필요한지 아주 조금은 알아가고 있어 부모님에게는 선물을 하고 싶지만 텅 비어버린 통장을 보며 그냥 내 마음을 외면해버리기도 한다.

이뿐일까 추석이 되면 받았던 용돈을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가족들을 만나는 게 부담이 배가 된다. 그간 여행을 위해 살아왔던 나이기에 명절 때 만나는 어른들은 언제 학교를 복학할 거며 언제 어떻게 무엇을 할지 너무도 많이 궁금해만 한다. 대답을 하는 것이 두렵지는 않지만 내 대답을 들은 어른들의 표정이 그려져 그 싸늘함이 내 삶의 의욕을 없애버린다. 그래서 명절에 휴무가 생기 기라도 하면 어릴 적 시골에 갈 때마다 항상 끓여주셨던 할머니의 꽃게 찌개와 그 미소들이 그리워 시골에 가볼까 하다가도 다음날 출근을 핑계 삼아 우리 집으로 숨어버리기도 한다.


명절이 지나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하늘이 점점 높아지면 2014년의 9월이 떠오른다. 22살이었던 그때 나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인의 집에서 살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출생지에서는 알지 못했던 향수를 느끼기도 했다. 한국이 막 그리웠던 적은 없었지만 끝내주는 엄마의 미역국도 신김치도 그리웠고 내가 이렇게 저금을 하지 않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내가 번 돈을 꽤 막 쓰기도 했다.

오늘 필리핀 어학 연수를 통해 생긴 인연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계획하고 있던 여행을 털어놨다. 남자 친구와 40일 정도 북유럽여행을 하고 마지막 일주 정도는 아빠를 초대할 생각이라고 했더니 언니들은 정말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꽤 높고 푸른 9월의 하늘을 보다가 지난 호주가 너무 그리워 우울감이 맴돌았는데 다행히도 내 미래엔 현실화될 수 있는 여행이 있었다. 익숙하고 포근한 9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만 빼면 매일이 행복했던 어린 시절 철없던 날들도, 향수로 가리어졌던 22살. 온종일 일해도 한없이 행복했던 호주에서의 지난날들도, 이제는 알 수 있다. 내가 얼마나 밝았는지,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많은 것들이 변하지 않았다. 9월의 하늘은 여전히 드높고, 선선한 바람은 역시나 달콤하다. 모든 9월의 나는 많은 꿈을 꾸고 있었고, 지금의 나는 지금을 이해하다가도 그때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세상도 나도 변했지만 세상도 나도 여전히 9월에 있고 내게 큰 힘이 될 수 있는 그와의 여행이 이 날들 뒤에 있다.


우리는 어린아이의 마음 같은 단순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한다. 우리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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