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4,2020
코로나의 여파가 크긴 했다. 코로나가 제일 심했던 2월엔 나 마저도 코로나 의심 증상이 있어 무급휴가 1주 휴무와 연차를 포함해 총 3주를 쉬기도 했고 3월 그리고 4월도 마찬가지로 휴무와 연차를 붙여 일주일씩을 쉬었다. 메르스, 사스 때도 끄떡없던 우리 회사는 계속해서 억지로 연차 쓰기를 강요했고, 다가올 오월엔 더 이상 연차를 쓸 수 없게 되자 무급휴가를 입에 올렸다.
4월, 저번 연도 여름쯤부터인가 아님 동생과 함께 여행을 했던 25살 의 여름쯤부터였던가 나는 생애 처음으로 우리 가족 모두와 함께 미국 여행을 계획했다. 그리고 여행 인생 최초로 비행기표를 취소했다. 미친척하고 가보려고도 했지만 4월의 미국은 그야말로 엉망진창. 토네이도 같은 그것이 작아지지도 떠나지도 않으며 그대로 그 자리에 머물러 온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우리 가족 모두 아쉬웠지만 목숨을 걸고 여행을 할 수는 없었다. 여행의 일 원 중엔 암 치료가 완료된 지 일 년밖에 안된 아빠가 있었고 행복해야 할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야 할 아빠의 첫 먼 해외여행이 두려움 속에 파묻히길 원치 않았다. 총 팔십만 원의 수수료를 물고 네 명의 비행기표를 취소했고, 며칠 동안 온 가족이 고심해 고른 숙소도 취소를 했다. 버팀목이 되어야 했던 이 여행이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고 나는 바람 빠진 풍선 같은 하루들을 보내고 있었다. 벌써 5월을 7일 앞두고 있고 퇴사를 197일 앞두고 있는 오늘, 그리고 4월 연차 마지막 날인 오늘 회사로부터 연락 한통이 왔다.
‘5월 무급휴가 희망하시는 분들은 오늘 안에 연락 주세요.’
회사의 상황도 조금은 좋아졌고, 나라의 상황도 조금 좋아져서 5월에는 무급휴가를 받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간의 여파가 매우 커서였을까, 연락을 받고는 좀처럼 쉬고 싶은 욕구가 사라지지 않았다. 항상 퇴사 후의 나의 생활을 머릿속에 스케치해왔고, 미리 행복해보기도 했고 미리 들떠보기도 했다. 하기 싫다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 등의 부정적인 말들은 사람의 마음을 더뎌지게 만든다는 걸 충분히 알았지만 몸은 마음처럼 안됐고, 머리처럼 안됐다. 하지만 내가 휴학을 하고 지금까지 꼭 지켜왔던 한 가지는 내가 아무리 너무너무 싫더라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도움되지 못하는 존재는 되지 말자는 거였다. 영향력이 있는 존재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다. 내가 일하고 있는 직종에는 그만큼의 욕심도 있지 않았고 누구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잔꾀 부리지 않고 열심히 해왔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한 가지 더 어른이라고 자신의 잘못이 무뎌지는 것, 나는 괜찮고 너는 안 되는 것, 이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난무한 이 세상에서 나보다 높은 사람은 큰 거리낌 없이 나의 생각을 이야기해왔다. 나의 선이 나의 마음이 나의 행동들이 맞다고 생각하고 맞았다. 그들이 항상 말하는 가이드라인을 지켜왔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자신감이라는 게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내게 크게 뭐라고 하지는 못했지만 나와 입사 8개월 차이가 나지만 그들을 잘 맞춰주는 내 후임을 좋아했고, 그가 먼저 승진의 기회가 생기는 상황이 왔다. 내 눈엔 아직도 그의 실수가 보이고 기록적으로 남아있는 것들도 많았지만 별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내게 피드백을 주지도 잘못을 꼬집어 주지도 않았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은 내게 여우짓을 좀 하라고 했다. 난 괜찮지도 그렇다고 괜찮지 않지도 않았다. 좀 힘에 겨웠다. 목숨을 거는 회사도 이곳에서 원하는 미래가 있지도 않았지만 박새로이가 항상 말해온 ‘소신’이라는 그 마음에는 이런 치사한 대가가 있었고, 그게 있는 이곳이 싫었고, 어딜 가나 이럴 것 같은 생각에 이 세상에 살기 두려워지기도 했다. 여러 날 동안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 ‘왜 그 사람 하나 때문에 언니가 짜논 인생 계획을 바꿔.’라는 동생의 한마디에 내가 많이 나약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러운 건 눈에 담지도 말자라는 생각으로 눈을 감기로 했다. 100프로 괜찮지는 않았지만 마음을 놓으니 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연차 마지막 날 아침. 회사로부터의 연락을 받고 고민을 했다. 어차피 마음도 떠버렸는데 역사상 다른 전염병이 돌 때는 이런 적이 없던 회사가 계속 쉴 시간을 주니, 돈은 큰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내 마음의 건강이 더 중요했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멈춰져 있는 지금. 하늘이 점차 본래의 색을 찾았고, 햇볕이 따뜻해진 지금, 조용한 지금을 더 느끼고 싶어 졌다. 그는 내게 여행경비 안 모을 거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여행 가기 전에 돈 조금 덜 쓰지 뭐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누구를 크게 만나지도 어딜 떠나지도 않는 이 삶이 나에게 집중하고 있는 이 시간이 지금이 아니면 있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알람을 맞추지 않고 일어나 간단한 과일과 시리얼을 먹고 외출 준비를 한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파란 하늘과 쨍한 햇빛을 마주하며 여유롭고 조용한 공간으로 발걸음을 한다. 벚꽃은 어느새 저버렸지만 그새에 푸르러진 나무들을 보고 미소를 짓고 나를 적어내고 나의 시간을 그려낸다. 이런 시간들이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네 삶에 쉽게 주어지지 않아서 그래서 부유하지 않아 질지 몰라도, 돈 몇 푼보다 사지 못하는 물건들보다 내 마음의 건강이 더 중요하니까 지금 난 쉼표가 정말 필요하니까, 무급휴가를 써야겠다고 연락을 했다. 오늘의 이 하늘들을 잊을 수가 없어서, 나는 푸른 하늘 하나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