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환경 따위가 내게 주는 영향1

0428.2020

by 느림주의자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인생이 계획대로 안됬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계획했던 여행도 마찬가지다. 참 딱하나 내 계획대로 안됬던 적은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취소된 미국 여행 정도


왜 갑자기 시작했는지 어떤 것에 꽂혔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지만 고3이 돼서야 시작한 미술도 그랬다. 미대 준비를 하는 나에게 엄마는 습관처럼 ‘재수는 안돼. 이번 연도에 떨어지면 군인이나 공무원 준비해’라고 말하곤 했지만 나는 군인이나 경찰처럼 마음껏 도덕성을 발휘하는 직업에도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 말들이 크게 나쁘게 들리지도 않았다. 아무튼 물렁물렁, 나에 대한 믿음이었지만 생애 처음으로 코피를 흘려가며 준비한 미대 입시는 꽤 큰 성과를 이뤄냈다.


우리 학원은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중3이었을 때의 나는 별생각 없이 얼른 돈을 벌고 싶어 실업계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지금도 그 선택이 후회되지는 않고 그것이 잘못된 것도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지도 않았는데 그때의 나는 미술 학원에만 가면 그 선택이 열등감으로 다가오곤 했다. 선생님과 인문계를 다니는 학원 친구들은 정시 접수를 하던 그날 내게 괜찮냐는 말을 건넸다. 뭐가 괜찮냐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가고 싶은 학교를 쓴 그 고집을 그 소신을 그 들은 어리석게 봤던 것 같다. 거의 모든 친구들이 가고 싶은 학교, 가고 싶은 과가 아닌 갈 수 있는 학교를 썼고 왜 그 학과가 가고 싶냐는 나의 질문에 적당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이곳뿐이라는 답변들을 했고 당연하게 들려왔다. 그 대답의 이유를 더는 묻지 않았다. 그들과 나의 가치관은 다른 거니까,

학원을 끝나고 집에 가는 길 또 한 번 정말 괜찮겠냐는 친구의 질문에 ‘가고 싶은 곳 썼으니까 최선을 다해봐야지. 가고 싶은 데니까’라는 대답을 하고 그날 이를 갈았던 것도 같다. 나는 이제 정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걸 하고 살 거라고. 내가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걸 도전했고 나는 진짜 됐어라는 말을 할 거라고.


미대 정시 입시는 신청 기간이 비슷한 만큼 비슷한 시기에 결과가 발표되고 한 시간 차이로 발표가 나기도 한다.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긴 했지만 나는 좋은 회사에 취업을 원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관리를 했었다. 3년 내내 반장을 해왔고 내신점수도 괜찮은 편이어서 정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3군데 정도의 학교가 합격되기도 했다. 그 전화를 받을 때마다 사실 많이 흔들리기도 했다. 정말 가고 싶은 학교가 가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서는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다. 나를 불안한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 미술 입시 준비는 다들 중3이나 고1부터 시작하는데 너무 늦은 것 같다며 별 관심이 없는 거 같은 부모님, 이제와 생각해보면 큰 응원을 받은 적은 별로 없었다. 걱정스러운 말들과 염려의 말들 그런 것들이 내게 너무 난무했다.

정시 준비를 하는 와중에 받았던 전화 3통은 전부다 미술 혹은 디자인 관련 학과 이기는 했지만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학교는 정시에 써놓았기 때문에 혹시나 그곳에 붙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쉬이 합격한 학교를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잘됬다는 말과 사람들은 대게 실업계는 인문계보다 내신 관리하기가 쉬우니까 수시로도 학교 많이 붙네라든지 어차피 정시에 쓴 학교 안될 거 같으면 그냥 입학비를 내라든지 등등 나를 살포시 짓누르는 말들을 많이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절대로 가고 싶은 학교를 포기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정시 합격자 발표날, 그날은 혹시 몰라 써놓았던 전문대학도 발표가 나는 날이었다. 9시엔 전문대학, 10시가 되면 가고 싶었던 학교가 발표되는 시간이었고 8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정말 나는 그때의 떨림을 잊을 수가 없다. 이미 가, 나군에 쓴 대학교들은 떨어진 상태였고 내가 제일가고 싶은 싶었지만 제일 높은 학교는 다군에 썼었다. 9시가 됐고 전문대학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접속자가 많았는지 빠르게 조회를 하긴 힘들었다. 이름과 주민번호를 입력하고 조회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마우스 클릭을 하기가 너무 두려웠다. 오늘이 정말 마지막 발표날인데 이제 더는 발표가 없는데 전문대와 가고 싶었던 학교, 이 두 개가 모두 떨어지면 나의 인생에서 미술은 없다는 생각을 하니 심장이 두근거려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조회 버튼을 눌렀고, ‘합격’이라는 글자를 본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정말 정말 다행이라며 지금 바로 입학금을 넣겠다는 엄마를 뜯어말렸다. 아직 한 군데 더 남았는데 한 시간만 있으면 발표 나는데 왜 먼저 넣냐는 말에 엄마는 어차피 거기 안될 테니까 그냥 미리 넣겠다고 했지만 나는 절대 절대 먼저 넣지 말라고 했고 엄마는 10시가 되면 전화를 달라는 말과 함께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일분일초가 돌같이 느껴졌고 너무 긴장이 된 탓에 속이 매스꺼웠다.

10시. 달달 떨리는 손가락으로 또다시 내 이름과 주민번호를 입력했고 ‘아이씨 몰라’라는 말과 함께 한 번에 조회 버튼을 눌렀다.

‘oo대학교에 합격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창을 캡처라도 해놓을걸 꽤 후회를 한다. 그 창을 본 순간 어!!!라는 외마디의 비명과 함께 눈을 비벼 다시 화면을 봤고 컴퓨터를 재시동했다. 혹시나 오류가 있을까 두 번 세 번 다시 확인을 해도 축하 메시지는 그대로 내 이름 옆에 떠있었고 마침 집에 있던 아빠를 흔들어 깨우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와 아빠는 말도 안 된다며 다시 한번 컴퓨터를 껐다 키라는 말을 전했고 나는 당연히 여러 번 껐다 켰다는 말을 했다. 부모님은 심각해졌고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는 눈물을 글썽거리셨던 것 같고 수화기 넘어 엄마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렸던 것 같다.

엄마 아빠에게 소식을 전하고 곧바로 어릴 때부터 나의 은인인 피아노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은 내게 ‘너 피아노 그만두고 미술 할 때 잘 될 줄 알았다’는 말을 전하셨고 정말 정말 축하한다는 정말 기특하다는 대단하다는 잘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고 미술학원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은 주무셨는지 막혀있는 목소리로 무슨 일이냐며 전화를 받으셨고 나는 격양된 목소리로 합격 소식을 전했다. 선생님은 추가합격이 아니고 정말 합격이냐고 물으셨고 진짜 잘됬다는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셨다. 나는 선생님께 조심스레 친구들의 안부를 물었고 나는 소식을 들었다.


무슨 마음인지는 몰랐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친구들을 너무 생각했던 것 같다. 선생님은 나를 제외하고 전부다 불합격을 하거나 제일 낮은 학교는 두세 명 정도 붙었다고 하셨다. 내 합격소식을 내 입으로 전하기 미안했다. 그렇게 나한테 괜찮냐는 말을 했던 친구들인데 어떻게 보면 나를 무시한 걸 수도 있는데 불합격이 된 친구들 원하지 않던 과를 붙은 친구들에게 제일가고 싶고 높은 학교를 쓴 나의 소식을 전하기가 힘들었다.

그때부터 나를 진짜 믿는 사람들이 생겼던 것 같다. 학교 합격한 게 누군가의 목숨을 살린 것도 인생에서 정말 정말 엄청나게 큰 일도 아닌 거 같았던 그때였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해줄 때 나의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내 친구는 이렇다며 나를 뿌듯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 번에 십만 원씩 드는 입시시험 비용마저 아까워 붙을 수 있는 학교를 쓰라던 부모님은 우리 첫째 딸은 하면 한다며 이모나 삼촌들 고모들 앞에서 나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자랑이 되는 일은 나에게 자신감을 주기 충분했고 그때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그리고 나는 동생에게 ‘언니는 아무도 응원하지 않을 때 하고 싶은 거 고집부려서 도전했고 노력해서 됐어.’라는 말을 자신 있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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