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019
직장인의 월급 통장은 채워짐과 동시에 세상에서 제일 빠른 속도로 잔고가 비워진다. 특히나 나처럼 기분파인 사람들은 더 심각하다. 예로 들면 아끼는 사람과 밥을 먹을 때 별일이 없는대도 밥값을 낸다던가 회식을 할 때면 내 육신과 정신을 좀 자제시키고 막차를 타고 집을 가야 하는데 꼭 막차시간을 넘겨 택시를 타고 귀가하곤 한다. 그렇게 언제 다 썼지 싶다가도 내 통장에 잔고는 술술 빠져 텅텅 비어버리곤 했다. 아빠와 여행을 다녀오고 우리 가족 넷이 꼭 한 번은 여행을 하고 싶은데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된다고 항상 생각하는데 그게 좀처럼 쉽지 않았고 부모님이 별 의미 없이 친구의 자식이 무언가를 선물하거나 해줬다는 이야기를 내게 할 때면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어느새부턴가 부모님과 백화점에 가는 게 꺼려지기도 했다. 사주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내 능력이 여의치 않아서 너무 속이 상했기 때문이다.
딱 지금으로부터 일 년 전 아빠에게 생각지 못한 병이 찾아왔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술을 엄청나게 자주 많이 마시고 담배를 엄청 태우셔도 한 번도 문제가 없으셨기에 우리 가족들은 원래 건강한 체질이라고 생각을 해왔고 아빠가 아플 거라는 상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집을 더 큰 곳으로 이사하고 좋은 일들이 생기고 있을 무렵 아빠는 평소에 자주 미뤄왔던 건강 검진을 이상하게도 제때 받으셨고 그렇게 위와 대장에서 암덩어리를 발견했다. 사실 여자 마음도 잘 모르는 엄한 구두쇠 아빠가 미웠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절대 아빠처럼 열심히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고 누구보다 나를 응원해주고 있던 아빠라는 어른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여행을 해오면서 정말 눈물 날 정도로 좋은 것들을 보고 있자면 가족 생각이 끊임없이 나곤 했는데 작년 여름 아빠와 함께했던 오키나와 여행에서 많은걸 느꼈다.
일본은 무슨 일본이냐던 아빠는 출국 전 어느 술에 취한 날 길거리에서 셀카봉을 사 오는가 하면 크게 재촉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여권을 만들러 가셨고, 출발하는 비행기 안에서 종일 창밖을 바라봤다고 하셨다. 그때 나는 일본에 먼저 도착해 혼자 여행 중이어서 아빠 혼자 일본에 들어오셨는데 아빠는 일등으로 나와선 평소에는 자주 보지 못했던 엄청나게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었다. 운전하는 나의 차를 처음 타고선 신기했는지 사진을 찍어서 가족 카톡방에 보내는가 하면 둘러볼게 그리도 많은지 내가 고개(목)를 하도 이리저리 둘러봐서 괜찮냐고 물어볼 지경이었다. 그리고 아빠와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사실 엄마 같은 경우는 친구분들이랑 일박이일로 여행을 가기도 하고 나를 따라 두세 번 정도 외국 여행을 하긴 했지만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한 것과 내가 아주아주 어릴 적 중국으로 잠시 출장을 갔을 때 빼곤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었다.
처음으로 단 둘이 여행을 떠나 아빠의 모습을 보고 난 아빠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다. 어느 날 문득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던 아빠는 티브이 화면에 눈을 떼지 못하며 내게 말을 걸었다.
‘수연아 저기가 어디야? 아이슬란든가? 저거는 언제 가야 볼 수 있어? 너는 저거 봤니?’
오로라를 본 아빠는 내게 끊임없이 질문을 했고 내 대답을 모두 듣고는
‘아빠는 저거 죽기 전에 한 번만 보고 싶다’
라고 말했다. 내가 아빠에게 오로라를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 아빠는 알까, 사실 몰라도 별 상관은 없다. 시간을 내어 단 둘이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의 앎은 별 의미가 없을 테니
일본을 떠나기 전날 한국에 있는 동생과 엄마에게 국제우편으로 편지를 보내자며 함께 식당에서 편지를 쓰는데 흘겨봤던 아빠 편지의 문장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여보 나는 이곳에 와서 오늘 수연이 덕에 새로운 일을 해봤어. 다음에 우리 네 식구 같이 오자. 대신 수연이 없이는 안될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