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1
나와의 여행에서 그는 다가오지도 않은 날들을 미리부터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며칠 전부터 하루에 몇 번이고 날씨 어플을 체크했었다. 하지만 제주도에 떠있는 먹구름과 비표시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는 먹구름이 가득한 제주로 왔다. 푸른 제주의 하늘은 보지 못했지만 어둑한 제주도 나름의 이쁨이 있다며 우리는 그 자체로 설레었고 어둑한 제주를 사랑하고 있었다.
먹거리를 잔뜩 들고 집에 돌아가는 길. 아쉽다는 그에게 한껏 멋있는 척을 하며 지나가는 시간을 아쉬워말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곤 그는 내게 지나간 시간이 아쉬운 게 아니라 이제 올 시간조차도 아쉽다고 했다. 고마웠다. 내 생각이 가득한 그에게, 그는 나의 꿈을 이뤄주고 싶어 했고,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어두운 밤, 파란 하늘도 빛나는 밤하늘의 별도 보지 못했지만 나는 빛나는 그의 마음을 보았고 그는 날 정말 애정하고 있었다.
맑은 서울의 하늘을 뒤로하고 떠나온 제주에는 비가 내렸다. 약 반년만에 떠나온 제주는 바뀐 게 없었고, 굳이 달라진 점을 찾아본다면 혼자가 아니라 그와 함께 왔다는 것. 이전에 한 제주여행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그 기억을 망치고 싶지 않아 제주여행을 꺼려했던 그가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떠나와주어 고마울 따름이었다. 9월 1일 우리의 제주는 조용했다. 우리가 좋아했던 김녕 해변의 물은 어두운 날씨에게 콧방귀라도 뀌듯 그대로 맑았고, 항상 시끌벅적했던 세화 해변 부근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푸른 하늘이 너무 보고 싶었지만 우리는 괜찮았다. 나름의 제주를 사랑했고, 그 분위기와 어울리는 노래를 들었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을 만큼 우리는 서로가 함께라는 점에 있어서 꽤 행복해하고 있었다.
숙소에 들어왔다. 반년만에 만난 게스트하우스 오너분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를 기억해 주니 다음 여행에도 그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뭘 먹고 싶냐 묻자 그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린 내가 좋아하는 딱새우 회를 샀고, 내가 먹고 싶어 했던 마늘 치킨을 샀다. 그와 내가 잘 맞아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그가 내게 항상 맞춰줬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별로였다.
티브이를 보면서 또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를 마주 보고 웃으면서 보내고 있는 이 시간들이 꿈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 지나가버리고 나면 허무할 것 같이 너무도 좋았다. 티브이를 보다 게스트가 유학을 다녀온 사실을 이야기했고, 나도 모르게 ‘나도 가고 싶었는데’라는 말이 입에서 나왔다. 사실 그는 이미 내가 유학을 정말 가고 싶어 했지만 못 가게 된 걸 알고 있었다.
그가 내게 물었다. ‘수연 씨도 유학 가고 싶죠?’.. 이때부터는 기억이 흐릿하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그에게 안경 펑펑 울었던 내 모습. 그리고 앞으로 아무 걱정 말고 수연 씨 꿈 같이 이루자고 하던 그의 말들.
나의 마음을 알아줬던 사람이 분명 있을 텐데,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가 처음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는 나를 원래 오랫동안 알았던 사람 마냥 나의 마음을 너무 잘 알아줬고, 나를 너무 잘 감싸줬다. 고마웠다. 나를 지지해 주는 그에게, 못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에게, 어떻게 항상 잘하냐고 말해주는 그에게, 수연 씨는 수연 씨 생각 좀 하라는 그에게,
오랫동안 기다렸던 제주의 별을 보지 못한 밤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왔고, 푸른 하늘도 못 봤다. 내일은 날씨가 좀 좋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질 즈음 그의 표정을 봤다. 그가 원래 이렇게 멋있었나 싶었다. 잘 웃지 않던 그가 세상에서 제일 잘 어울리는 미소를 하고 나를 쳐다보고 있으니 좋지 않은 날씨가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그가 내 옆에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다. 연인이라는 이유를 떠나서 내게 꼭 필요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그런 마음이 들었다. 제주의 별 보다 조금 더 이쁜 마음의 별이 떴다. 오늘 비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