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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의 법칙

-낯선 이와 친밀하게 대화하는 법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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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애정하는 시인 중 한 분인 정현종 님의 시 <방문객>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중략)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저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이 구절을 떠올리곤 해요. 전혀 몰랐던 낯선 이를 만나 그 사람의 일생을 읽어내는 일, 저에게 인터뷰란 그런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엄마가 아닌 프리랜서 작가로서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프리랜서 작가로서 저는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일을 합니다. 기업체의 사사(社史),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보고서, Corporate Brochure 같은 기업 홍보물에 들어가는 글을 쓰기도 하고, 잡지 등 다양한 매체에 취재 기사나 인터뷰 기사를 기고하기도 하며, 여러 가지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개하는 카피라이팅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기업 홍보 및 광고에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와 매체 기사를 생산하는 일을 하는 셈이죠. 그중에서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업은 인터뷰 기사를 작성하는 겁니다.


사실 인터뷰 기사는 큰돈이 되진 못해요. 기사 한 편당 약 40~60만 원 정도의 원고료를 받는데, 이 비용에는 인터뷰 섭외와 인터뷰, 원고 작성, 편집 등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매체마다 요청하는 게 다 다르기 때문에 이 중 인터뷰 섭외와 편집은 제외되기도 해요.-비용도 한 건당 얼마, 이렇게 받는 경우도 있고, 한 페이지당 얼마, 이렇게 받는 경우도 있고, 다 다릅니다. 기사 분량 역시 마찬가지예요. 게재하게 될 매체가 어떤 종류인지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하지만 대개는 A4 2~3장 정도가 일반적이에요. 굳이 따지자면 들이는 노력에 비해 버는 돈은 적은 편이죠.


하지만 인터뷰는 배우는 재미가 있는 일입니다. 저는 그래서 인터뷰를 좋아해요. 낯선 사람을 만나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거든요. '아, 저 사람은 저런 상황에서 저런 생각을 했었구나.' 혹은 '아, 이래서 이 사람은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둘 수 있었구나' 이런 것들이요. 나와 다른 생각, 다른 행동을 기반으로 도전을 거듭해 마침내 성공을 일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알지 못할 고양감 같은 게 생기거든요. 나는 갖지 못한 걸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감탄과 경외심 같은 거죠. 그리고 그런 경험은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게다가 인터뷰는 평소 만나기 힘든 스타나 예술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줘요. 인터뷰를 통해 배우 한석규, 가수 겸 배우 김창완, 지휘자 정명훈,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피아니스트 백건우, 화가 박서보, 소설가 이외수, 김영하, 시인 황지우 같은 유명인을 만날 수 있었고, 그분들의 인생관, 예술관 등을 바로 옆에서 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에요. 인터뷰를 매개로 좀처럼 하기 힘든 가치 있는 경험을 하는 셈이니까요.


물론, 유명인이든 일반인이든 인터뷰를 할 때는 사전 준비가 필요합니다. 자료 조사를 통해 최근 근황을 숙지해야 해요. 인터뷰의 목적도 중요합니다. 최근 영화를 개봉했다거나,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거나, 연주회나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거나, 신간을 냈다거나... 인터뷰이가 원하는 것과 매체가 원하는 것을 일치시키는 작업이 필요해요. 질문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질문의 흐름이 인터뷰의 질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영화를 찍을 때 미리 콘티를 그리는 것처럼, 인터뷰 질문의 순서도 미리 정해두는 게 좋습니다. 일종의 인터뷰 현장 시나리오를 짜는 거죠. 물론 모든 게 생각했던 대로 진행되진 않습니다. 가끔은 질문의 순서가 바뀌기도 하고, 돌발 질문을 던지는 경우도 생겨요. 늘 그렇듯 사람의 일에는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발생하니까요. 그래서 인터뷰어에게는 유연성과 융통성도 필요합니다. 게다가 인터뷰는 어떤 의미에선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공력 싸움과도 같아요. 고수인 인터뷰이에게 솔직하고 인상적인 답변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내가 먼저 인터뷰의 고수, 질문의 고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짜릿하고 흥미진진한 고수와 고수의 대결을 완성할 수 있으니까요.


여기에 추가로 저만의 인터뷰 비결을 덧붙이자면, '경청'과 '칭찬'을 꼽고 싶습니다.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중간에 끊는 법 없이 잘 들어주되, 맥락에 맞는 질문을 적절하게 덧붙이는 거죠.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이런 게 궁금해졌다'라는 걸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겁니다. 실제로 저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많은 편이에요. 그게 제가 인터뷰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굉장히 활발하고 사람 만나길 좋아하는 '인싸'인 건 아닙니다. 저는 지극히 내향적이고 낯선 사람이나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는 INFP의 인간이에요. 주목받는 걸 꺼리고 어딜 가면 꼭 구석자리에 앉는 타입이랄까요? 어쩌면 인터뷰어에 적합한 인간은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뭐, 상관있나요? 인터뷰를 좋아하고 인터뷰 기사를 잘 쓴다면 그걸로 족한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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