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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인정하기

-후회와 성찰 사이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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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딸의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해요. 2000년생, 우리 나이로 스물셋인 딸은 현재 직장에 다니는 중입니다. 올해 초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6개월 여만에 취업에 성공했어요. 히키코모리처럼 집안에만 틀어박혀 밖에 나가지도 않고 뭘 배울 생각도 하지 않던 딸이 취업에 성공하다니, 답답했던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단비가 내린 것처럼요.


딸에 대한 제 마음은 언제나 미안함과 대견함이 뒤범벅된 복잡한 감정이에요. 딸이 태어나던 무렵만 해도 저는 편집 기획사에 다니던 직장인이었거든요. 아이 양육은 함께 살던 시어머니에게 미뤄둔 채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죠. 당시의 저는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마감과 클라이언트의 압박에 시달리며 윗사람 눈치까지 보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 이건만, 당시에는 딸에게 많은 관심과 애정을 주지 못했어요. 엄마란 직업이 처음이라 적응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던 거죠. 게다가 그때는 편집기획자라는 직업 역시 2~3년 차밖에 안 됐던 시기니까요.


그렇게 딸의 양육을 전적으로 시어머니에게 의지하다 보니 딸에게 우선순위는 언제나 할머니였어요. 그다음이 저보다 집에 일찍 들어오는 아빠였고요. 저는 3순위에 불과했죠. 내가 힘들게 배 아파 낳은 딸이 나를 3순위로밖에 안 보는 게 가슴 아팠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만큼 딸과 보내는 시간이 적었으니까요. 둘째를 낳고 3년 후쯤 완전히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딸과 함께할 시간을 가지게 됐지만, 그때 이미 딸에게 저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존재가 돼버린 후였어요. 흔히들 부모는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말은 자식에게도 적용되더군요. 딸은 저를 기다려주지 않고 훌쩍 커버렸어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게 모녀관계라던데, 우리는 서로 데면데면한 모녀가 된 지 오래였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결정적 사건들을 겪으며 딸과 저의 관계는 조금씩 개선됐어요. 우리의 관계를 완전히 뒤바꿔버린 몇 가지 결정적 사건들에 대해선 나중에 또 얘기할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어쨌거나 지금 우리는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갖고 서로의 영역-정확하게 말하면 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꽤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생각보다 간단해요.


첫 번째는, 딸이 원하지 않는 일을 강요하지 않는 겁니다. 딸의 의사를 존중하는 거죠. 밥 먹을 시간이 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등짝을 때리며 일어나라고 강요하기보다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어요. 많이 피곤한가 보다 생각하며 스스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준 거죠. 그리고 딸이 일어나면 바로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딸아, 배고프진 않니? 지금 밥 먹을래?"라고요.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준비는커녕 침대와 물아일체가 돼 방 밖으로 나오지 않을 때도 일단은 기다렸습니다. '딸의 마음이 제일 급하겠지, 아마 심란하고 복잡할 거야, 시간이 좀 지나면 뭐라도 하겠지', 생각하며, 가능한 한 잔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기다리는 제 맘은 몹시 힘들고 답답했어요. '왜 저러고 가만히 있을까? 요새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데, 저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어떡하려고 그러지? 뭐라도 하라고 얘길 해야 되나? 학원이라도 다니라고 할까?' 별의별 생각이 다 머릿속을 들락날락했죠. 하지만 꾹 참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놀라운 건 제가 '이쯤 되면 뭐라도 얘기하자'라고 정해둔 시한 이전에, 딸은 늘 먼저 무언가를 했다는 거예요. 자격증 시험에 등록해 시험을 치른다든지, 학교 취업상담실에서 취업할 회사를 추천받고 면접을 간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그렇게 졸업하고 6개월 여만에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방법을 찾아간 거죠. 제가 답답한 마음을 참고 기다려주는 동안에요. 그동안 제가 한 거라곤, "엄마, 나 아무것도 안 하고 계속 이렇게 집에 있고 싶어"라고 얘기할 때, "음, 그러기엔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닌 걸. 너도 알겠지만 엄마가 너의 평생을 책임질 순 없어. 엄마랑 아빠는 곧 은퇴할 시기란다"라는 답을 들려준 것뿐이에요.


두 번째는, 딸은 나와 전혀 다른 존재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딸의 중고등학교 시절, 저는 딸에게 여러 가지를 강요했어요. 딸이 제 기대에 맞게 움직이길 바란 거죠. 주로 공부에 관한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이 방법은 옳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지 처절한 실패를 경험했어요. 딸과의 사이만 더 나빠졌을 뿐, 딸의 성적은 올라가지 않았으니까요. 딸은 저에게 감정적으로 폭발했고, 그제야 저는 제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걸, 나에게 맞는다고 해서 딸에게도 맞는 방법은 아니라는 걸 인정했습니다. 인정은 지난날의 저에 대한 후회와 더 이상 이런 식으론 곤란하다는 성찰로 이어졌고요. 그렇게 딸과 저의 다름을 인정하고 나니, '딸은 엄마를 닮는다'는 일반적인 명제에 얽매여 그동안 딸과 제 관계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걸 깨닫게 되더군요. 이제는 압니다. 딸은 저와 닮은 부분보다 닮지 않은 부분이 더 많지만, 여전히 저는 딸을 사랑하고 딸 또한 저를 사랑한다는 걸요.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강요나 압박이 아닌 인정과 성찰이었다는 것을요.


이런 말이 있죠?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도 늦는다고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후회는 빠를수록 좋다는 걸 딸과의 관계를 통해 알게 됐으니까요. 단, 그 후회가 후회로만 머물지 않고 성찰과 변화로 이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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