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과 불안, 초조를 견디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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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 꼭 갖추어야 할 덕목을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기다릴 줄 아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기다림은 몹시 지루할 뿐 아니라, 걱정과 불안, 초조를 동반합니다. 바쁠 땐 간절히 휴식을 바라다가도 2~3일 쉬다 보면 '왜 아무에게도 전화가 안 오지? 이러다 일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되면 어쩌지?'를 걱정하며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기 마련이거든요. 하지만 이 '걱정·불안·초조' 3종 세트는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그저 제 자존감만 갉아먹을 뿐이죠. 가끔은 스스로를 믿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벌써 10여 년 전 얘기인데요, 저는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도중에 한 편집 기획사에 취업한 적이 있습니다. 그전까지 제 마지막 직장은 디자인하우스라는 출판사였어요. 여기서 발행하는 VIP 매거진의 기자로 1년 반 정도 일하다가 그만두고 프리랜서 일을 시작한 게 2008년 무렵이었죠. 이후 약 7년 정도 꽤나 잘 나가는 프리랜서로 지냈답니다.-제 인생에서 제일 돈을 많이 벌던 시절이었어요.-당시 메인 잡은 대기업 사보, 서브 잡은 CEO회고록, 기업 Annual Report, Brochure 등 기업 홍보물의 기획, 진행, 편집이었어요. 문제는 이 일들이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어느 순간 끊겼다는 데 있습니다. 매달 지불해야 할 카드대금과 보험료, 아이들의 교육비를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해지더군요. 여기에 걱정·불안·초조 3종 세트까지 더해지자, 다시 취업을 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당장 해결해야 할 비용을 생각하니 머뭇거릴 틈이 없더군요.
하지만 이때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은 아니었어요. 조직 생활을 한참 떠나 있었던 터라 적응이 쉽지 않았거든요. 당시 나이가 40대 초반에 직급마저 높았던 터라 책임져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고요. 게다가 연봉값은 해야 한다는 저 나름의 강박도 심했답니다. 더 속상했던 건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동안 같이 일했던 클라이언트들의 연락이 쇄도했다는 거예요. 한 달에서 두 달 정도만 느긋하게 기다렸으면 되는 건데, 그걸 못 참아서 7년여간 쌓아온 클라이언트 인맥을 전부 놓쳐버리게 된 거죠. 물론 취업한 이후 참여했던 프로젝트들은 다 의미 있었고, 그때 했던 경험들 역시 피가 되고 살이 됐어요. 하지만 새로 취업한 직장에서도 저는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스트레스에 잔뜩 찌든 채 약 1년 반 만에 프리랜서 일로 돌아왔으니까요. 원상 복귀한 셈이죠. 다시 맨 땅에 헤딩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요. 그나마 긍정적인 건 그 과정에서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는 거예요. '마음이 조급하면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그게 2015년 가을의 일이니 다시 프리랜서로 복귀한지도 벌써 7년 차에 접어드네요. 제 프리랜서 인생을 굳이 나누자면 2008~2014년이 1기, 2015~2022년이 2기인 셈인데, 1기와 2기는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 2기에선 기획, 진행, 편집 일은 가급적 지양하고 취재와 인터뷰, 원고 작성 등 프리랜서 작가 일에만 집중했어요. 두 번째, '앞으로 절대 취업하지 않겠다, 평생 프리랜서 작가로 살겠다'는 각오를 다졌답니다. 그러자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어요. 글 쓰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고, 사람 만나는 일이 줄어들어 스트레스도 완화됐죠. 물론 수입도 줄었지만, 지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조정을 하니 이 또한 걱정할 일은 아니더라고요.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린 일이란 걸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겁니다.
수입도 서서히 상승했어요. 2기 7년 차가 된 지금은 2기 초반인 2016년 대비 1.5~2배 가까운 소득을 올리고 있으니까요. 물론 대부분 연봉 1억 이상인 제 또래의 직장인에 비하면 그리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제 성향에 맞는 일을 하며 돈도 벌 수 있다는 데 120% 만족하고 있답니다. 여전히 휴식 기간이 길어지면 걱정·불안·초조에 시달리기 일쑤지만, 이젠 알아요. 기다리면 기회는 온다는 걸. 그리고 필요하면 기회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는 걸. 역시 2회 차 인생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