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와 사이 좋게 지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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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섯 살 터울의 두 아이 엄마입니다. 첫째는 딸, 둘째는 아들이에요. 둘 다 저와는 그다지 닮은 점이 없어요. 개인주의에 자유를 추앙하죠. 가끔 '쟤들은 왜 저러지?'하는 의문이 터져나올 때도 많지만, 그래도 저와 아이들의 사이는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방법은 간단해요. 말을 줄이고 톡을 늘리는 거죠.
프리랜서 작가보다 엄마가 더 어려운 직업이라는 건, 결국 관여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프리랜서 작가의 사회적 관계는 명확합니다. 의뢰받은 일을 고퀄로 처리하고 그에 상응하는 원고료를 받으면 되니까요. 서로 얼굴을 붉히거나 감정을 상하게 할 일이 별로 없어요.
하지만 엄마는 다릅니다. 아이들과 하루 종일 부대끼며 살아가고, 서로에 대한 애정의 깊이 만큼 상처받을 일도 많습니다. 사소한 말 한 마디에 감정이 상했다가, 불같이 화를 냈다가, 또 '미안하다', '잘못했다', 화해하는 과정의 연속이죠. 그나마 다행인 건 아이가 둘이면 첫째 때 실수하거나 잘못했던 일을 둘째 때 만회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첫째의 상처는 상처로 남지만요.-꽤 오래 전이긴 한데, 딸에게 '그때 엄마가 미안했어'라고 얘기하니, '응, 알겠어. 근데 사과를 꼭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니지?'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은 곧 사과를 받아들이고 싶진 않다는 얘기죠.ㅠ.ㅠ-따지고 보면, 신입사원이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거치며 일을 배워나가듯, 엄마 역시 별별 시행착오를 다 겪으며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성찰하고 인정하면서 성장해나가는 듯합니다.
오늘은 둘째 아들 얘기를 해보려고 해요. 우리 나이로 열여덟 살,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실용음악과 지망생이에요. 실용음악학원에서 랩 보컬과 미디(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를 배우고 있죠. 일반 피아노학원에서 피아노 연주 레슨도 받고 있고요. 사실 처음부터 아들에게 음악을 시키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중학교 땐 성적을 올리기 위해 여기저기 학원에 다니게 하고 과외도 시켰더랬죠. 하지만 오래 가진 못했어요. 딸 때의 경험으로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시키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안 저는, 아이가 싫다고 하면 강요하지 않고 기다려주었거든요. 문제는 그 사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등교하지 않는 날이 많아지고,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잃으면서 성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거예요. 원격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아 학교에서 전화가 오는 일도 늘어났고요. 공부는 하지 않고 친구들이랑 어울려 당구 치고, 볼링 치고, PC방에서 게임하는 아이를 지켜보며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반항기에 접어든 아들은 제 말을 들으려고 하질 않았답니다. 그래서 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 하루 날을 잡아 대화를 시도했죠.
"O준아, 공부가 싫으면 뭐라도 다른 걸 배워볼래? 이제 너도 고등학생이 됐으니 알 거 아냐.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바로 사회에 나가야 되는데, 뭐든 배워둬야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지. 아직은 뭘 잘 하는지, 뭐가 하고 싶은지 잘 모르니 하나씩 시도해보는 건 어때? 넌 뭘 제일 먼저 배워보고 싶어? 요리? 디자인? 헤어메이크업? 어떤 게 좋아?"
아들의 대답은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괜찮은 실용음악학원을 물색해 함께 상담을 하러 갔어요. 사실 처음엔 음악을 전공하겠다는 각오도 없었고, 가수나 아이돌이 되겠다는 목표도 없는 상태였어요. 그저 6개월이나 1년쯤 배우다 보면 아들도 생각이 있을 테니, 이건 내 길이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 있겠지, 정도의 가벼운 맘이었습니다. 이쪽이 아니라고 하면 '다음 번엔 요리학원에 보내서 자격증을 따게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그런데 의외로 아들은 랩 가사를 쓰고 랩 음악을 만드는 데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 '잘한다'는 칭찬을 받을 만큼 재능도 있었고요. 처음 1년간은 주변의 평가에 따라 마음이 왔다갔다 했던 모양이지만,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부터는 아예 실용음악을 전공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열심히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실용음악과 진학을 목표로 랩 보컬 수업 외에 미디 수업과 피아노 레슨까지 추가로 듣고 있고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학원에 가는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는 데도 군소리 없이 잘 따라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어요. 조급한 마음에 화를 내며 다그친 적도 많았고요. 그런데 화를 내는 건 서로 감정만 상할 뿐 별로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무작정 내지르기보다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을 줄이는 쪽을 택했어요. 귀가시간이 많이 늦을 땐, 왜 이렇게 늦었는지를 먼저 물어봐줬고요. 마주할 시간이 길지 않으니 아이를 차로 데려다주는 등교시간에 근황토크를 하거나 톡을 하는 횟수를 늘렸습니다. 다그치기보다 먼저 들어주고 힘든 점, 어려운 점을 물어봐주고 다독여가며 음악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전달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많이 기다려주었습니다. 덕분에 이제는 엄마에게 친구들과의 고민을 털어놓을 정도로 관계가 개선됐어요. 여전히 성적은 전교 하위권에 머물고 있지만,-늘 공부를 잘하는 축이었던 저에겐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충격적인 점수와 전교 석차를 기록 중입니다.ㅠ.ㅠ-뭐 사람이 다 잘 할 수 있나요? 아들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한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