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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저녁 'To do list'를!

-프리랜서 작가와 엄마, 두 가지 직업을 병행하려면

by 최혜정

01.


프리랜서 작가와 엄마라는 두 가지 직업이 평화롭게 공존하려면 몇 가지 규칙을 정해두는 게 필요합니다. 저에게는 그 중 하나가 매일 저녁, 다음날 꼭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만들어두는 거예요.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9월 7일(수)

1. 프로젝트명-원고 작성(10:00까지)

2. 프로젝트명-칼럼 2편 리라이팅(24:00까지)

*10:00요가/17:00PT/청소/빨래/재활용쓰레기 분리수거


먼저, 해야 할 일의 목록은 두 가지로 나눕니다. 번호를 매기는 건 프리랜서 작가로서의 일이에요. 마감 일정을 고려해 우선순위를 짜고 마쳐야 할 시간까지 적어 넣습니다. 물론, 계획은 계획일 뿐 늘 이대로 지키는 건 아니에요. 가끔은 하려던 일보다 더 급한 일이 치고 들어오는 경우도 생기고, 갑작스럽게 견적서를 보내야 하거나 클라이언트 미팅에 가야 하는 경우도 생기니까요. 하지만 가능한 한 계획을 지키려고 노력은(!) 합니다. 일에 관한 계획은 될 수 있는 한 '빠듯하게'가 아니라 '느슨하게' 잡는 게 원칙이거든요.


한때는 일에, 그리고 마감 일정에 나 자신을 끼워 맞췄지만, 이제는 절대 나보다 일을 우선시하지 않습니다. 내가 건강해야 일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덕분이죠.-뒤늦게라도 알아차려서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늘 합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 허리디스크나 목디스크 같은 만성질환에 시달렸을지도 몰라요.-마감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습니다. 이전까진 마감 일정을 어기면 큰 일 나는 줄 알았어요.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질 못했거든요. 하지만 이젠 마감이 조금 늦어진다고 해서 스스로를 괴롭히진 않습니다. 잡지사나 출판사의 마감 독촉이 없으면, 아직 시간이 있나 보다, 라고 맘 편하게 생각할 정도입니다. 물론 그 분들은 저로 인해 속이 탈 수도 있겠지만, 아닌 말로 남 생각 먼저 하다가 내가 곤란에 처하면 안 되니까요. 스트레스를 덜 받아야 원고가 더 잘 풀리기도 하고요. 물론, 여기에도 예외는 있습니다. 내일까지 원고 안 주시면 책이 안 나온다, 같은 급박한 클레임이 있을 땐 밤샘작업도 마다하지 않고 합니다. 저 때문에 책이 안 나오는 불상사가 생기면 안 되니까요.



해야 할 일의 목록 중 번호를 매기지 않고 '*' 표시로 구분해둔 일은, 엄마로서의 일, 혹은 개인적인 일입니다. 이 또한 꼭 해야 할, 아주 최소한의 목록만 적어두는 게 원칙입니다. 없는 일도 찾아서 한다거나, 잠시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인다거나, 하는 건 저와는 전혀 맞지 않아요. 저는 미룰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미루고, 꼭 해야 할 최소한의 일만을 합니다. 가끔은 그 최소한의 일도 미룰 때가 많아요.


아침에 일어나 아이 둘을 학교와 직장에 데려다 준 후엔 가급적 쉬고 쉬고 또 쉽니다. 집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청소와 정리는 싫어하기 때문에, 침대에서 핸드폰과 놀 때가 많고요.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과 먼지만 조금 참으면 집에서 혼자 노는 시간은 언제나 쾌적합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니 귀찮아도 이틀에 한 번 꼴로는 합니다. 하지만 청소는 로봇청소기가 담당하는 데도 일주일에 한 번 할까 말까예요. 저를 닮아 아이 둘도 청소나 정리와는 담을 쌓은지 오래지만 그러려니 합니다. 잔소리를 하면 서로 기분이 상하고, 또 어차피 치울 사람은 제가 될 테니까요. 그래서 아이들 방은 웬만하면 내버려두고, 거실과 부엌, 우리 부부방만 청소하는 게 일상입니다.-아이들 방은 이주일에 한 번쯤 청소해줍니다.-남편도 제가 하기 전까진 손 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남편의 장점은, 굳이 찾자면, 제가 청소를 안 해서 집안이 말도 못하게 더러워도 절대 잔소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자기가 하지도 않을 뿐더러 하고 싶지도 않으니 입도 대지 않겠다는 거죠. 영리한 남편입니다.


단, 재활용쓰레기는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에만 버릴 수 있기 때문에 꼭꼭꼭! 해치웁니다. 하기 싫은 건 빨리 해치우는 편이기 때문에 늘 아침에 치워요. 가끔 저녁까지 두면 남편이 해주기도 하지만, 그걸 기다리느니 그냥 내가 하는 게 맘이 편합니다. 음식물 쓰레기도 빨리 치우고요. 얘는 냄새가 나서 오래 둘 수가 없어요. 문제는 식사 준비예요. 저는 요리도 싫어합니다. 막상 하면 못하진 않는데, 하기가 귀찮아요. 집밥은 들인 정성과 시간에 비해 결과가 영 신통치 않거든요. 남편도, 딸도, 아들도 한 번 먹은 건 두 번 다시 먹지 않는 편이라, 그날은 맛있게 먹었다 해도 남은 음식은 결국 내 차지가 될 때가 많습니다. 딱 한 끼 분량만 만드는 건 쉽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남은 음식을 전부 먹어치우면 냉장고는 깨끗해질지 몰라도, 내 몸 속에 지방이 쌓입니다. 무거운 몸은 만병의 근원이 될 수 있어요. 다이어트에 돈도 숱하게 들어가고요. 그래서 가급적 집밥 하는 횟수를 줄이고, 간편한 밀키트와 외식에 의존합니다. 가족들도 이 편을 더 좋아해요. 요리하면서 짜증 내는 와이프와 엄마를 보느니 남이 해준 밥을 먹는 게 낫다는 걸 아는 겁니다.


사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해요. 제가 프리랜서 작가를 해서 버는 돈이 매년 4,000~6,000만 원 정도인데, 어쩌면 나는 집안일엔 젬병이라 그걸 만회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지도 모르겠다고요. 뭐,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나는 나대로, 가족들은 가족들대로 행복하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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