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찬란한 순간과 마주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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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저는 침대에 한껏 매달린 나무늘보 같은 상태로 지냈습니다. 어쩌면 '때때로'가 아니라 '매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뜻하고 안온한 침대에 몸을 누이면 '일어나서 밥 해야 되는데', '일어나서 글 써야 되는데', '일어나서 운동 가야 되는데'가 머릿속에 무한 반복돼도 이상하게 침대와 몸이 분리가 되질 않았어요. '오늘은 꼭 요가 가야지', '오늘은 꼭 마감해야지'를 수천, 수만 번 되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은 피곤하니까 하루만 집에서 쉬자', '꼭 오늘까지 마감하라고 한 건 아니니까 마감은 내일 해야지'라는 타협안을 내놓게 됐달까요? 문제는 이렇게 침대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을 미루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미루다 보면 '오늘도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구나'라는 자책과 '나는 도대체 왜 이럴까?'라는 자괴감의 시간이 찾아왔다는 겁니다. 맞아요. 악순환이 반복됐던 거죠.
하지만 저는 오래도록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냥 모든 게 귀찮고 의욕이 없었어요. 빨래가 쌓여서 빨래바구니가 넘쳐나니 어쩔 수 없이 세탁기를 돌렸고,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올 때가 되니 마지못해 저녁상을 차렸습니다. 저녁상을 치우고 나면 쌓여 있는 설거지거리 때문에 할 수 없이 고무장갑을 꼈고, 먼지가 바닥을 굴러다닐 때쯤 되어서야 겨우 청소기를 돌렸어요. 뭐든 회피할 수 있을 때까지 회피하다가 더 이상 미루지 못하는 순간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주어진 일을 해치웠습니다. 당연히 조금도 신나지 않고 즐겁지도 않았어요.
그렇다고 지금 제 모습이 180도 달라졌느냐 하면, 그렇진 않습니다. 사람의 성향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요. 다만, 두 가지가 달라졌습니다. 첫째, 오늘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되뇌기보다 침대와 몸이 분리돼야 할 시간을 정해둡니다. 알람을 맞춰두는 거죠. 그럼 모든 게 심플해집니다. 알람이 울리는 순간 그냥 몸을 일으키게 돼요. 무조건적 반사처럼요. 둘째, 간혹 몸이 피곤하고 늘어져서 제때 일어나지 못해도 자책하거나 비난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조금 늦어졌지만 지금 빨리 일어나면 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거죠. 그렇게 아주 조금 나에게 관대해진 것만으로 끝도 없이 이어지던 우울감이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침대에서 한 걸음 멀어지는 연습을 하는 중입니다.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은 침대와 멀어지면 좋은 점을 하나하나 꼽아 보는 거예요. 지난 목요일에는 친구들과 전시를 보기로 했던 약속을 떠올렸습니다. 출발하기 전까지 글 한 편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저절로 몸을 일으키게 되더군요. 오늘은 마라톤대회에 참가해야 한다는 걸 떠올렸습니다. 가기 전에 떡진 머리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맘이 급해져 바로 일어나 샤워를 하러 갔습니다. 그렇게 침대에서 한 걸음 멀어지면 오늘의 가장 찬란한 순간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나 자신, 잘했어. 칭찬해'라는 말을 속삭이게 돼요.
더 이상 미루지 못하는 순간까지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건 여전합니다. 하지만 자책하거나 자괴감에 빠지지 않고 그냥 한 걸음 내딛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달라졌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느리지만 조금씩 나를 달라지게 한 건 아주 작은 관점의 변화, 그리고 실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