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조금씩 거리를 늘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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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 번도 운동을 좋아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운동은 그저 오늘 해야 할 일의 목록 중 하나일 뿐이에요. PT 수업 5년 차쯤 되면 운동이 습관이 될 만도 하고 운동이 좋아질 만도 한데, 왜 아직도 '운동하러 가야지'라는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웬만하면 안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조만간 100세 시대가 열린다는데, 남은 생 동안 골골하지 않고 건강하게 살려면 하기 싫어도 그저 열심히 하는 수밖에요.
제가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내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면서 운동을 다녀온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열심히 운동한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함과 성취감이 차오르거든요. 이런 이미지 트레이닝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습니다. 상상이 상상에 그치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효과가 있거든요.
토요일에도 지난밤의 생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운동을 다녀왔습니다. '가지 말까? 나가려니 귀찮은데...' 같은 부정적 생각이 차올랐지만, 이를 꾹 누른 채 텀블러와 운동화를 챙겨 집을 나섰어요. 저로선 일단 집을 나선 것만으로 반 이상은 성공입니다. 하기 싫은데도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마음으로 한 걸음 뗀 셈이니까요.
헬스장에 도착한 후에는 바로 러닝머신에 올랐습니다. 다른 걸 먼저 하다 보면 뛰기가 싫어지거든요. 오늘의 목표는 5km 달리기.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 번은 6~7 레벨의 스피드로 5km를 달리는데, 이를 완수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45분입니다. 마라톤대회 기록과는 무려 10분이나 차이가 나는데, 아마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없이 약간의 경사진 길을 달리는 거라 가속도가 붙을 일이 없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문제는 러닝머신 달리기가 몹시 지루하다는 겁니다. 야외 달리기처럼 시원한 바람을 맞을 일도, 주변 경관을 감상할 일도 없다 보니, 타이머에만 온 신경이 쏠립니다. 그러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제 겨우 5분, 500m 달렸네. 앞으로 40분을 어떻게 달리지?' 그런데 이상한 건요, 그렇게 5분을 달리다 보면 다시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겁니다. '10~12분만 좀 빠르게 달려볼까? 그럼 2km 가까이 될 텐데...' 그렇게 2km를 달리고 나면, '그래, 5km는 못 뛰어도 최소 3km는 뛰자' 스스로에게 이런 다짐을 하게 됩니다. 3km라는 고비를 넘고 나면 '기왕 이렇게 된 거 4km까지 뛰어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그렇게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다 보면, 어느새 5km라는 목표에 도달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이런 과정이 쉽진 않습니다. 다리가 당기고 숨이 차오르고 땀이 후드득 떨어지죠. 입안이 말라붙어 물을 수시로 보충해 줘도 목이 계속 탑니다. 3km를 넘어선 후부터는 계속 7 레벨로 달리다, 6.0 레벨로 빨리 걷다가, 6.5 레벨로 달리다를 반복하며 '이제 그만 뛸까? 3km 넘게 뛰었으니까 굳이 5km까지 안 뛰어도 되잖아'라는 마음속 유혹과도 싸워야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외적 힘듦과 내적 갈등을 모두 감수하고 목표에 도달했을 때의 성취감은 뭐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간신히지만 결국 해냈다'는 만족감을 얻게 되는 거죠.
달리기가 주는 성취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내 몸이 가진 한계를 계속 경신하는 느낌이랄까요. 차오르는 숨을 천천히 내뱉으며 내 몸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컨트롤하는 기분이 아주 그만이에요. '내가 지금 내 몸에 상냥하게 귀 기울이고 있구나', '나는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라는 걸 체감하게 되는 거죠.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나를 알아갑니다, 5km를 달리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