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혼자 마셔도 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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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최애' 술은 맥주입니다. 누군가는 '육퇴' 후 마시는 맥주 한 잔이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최고의 힐링이라고 하던데, 저 같은 경우 아이가 둘 다 성인이라 '육퇴'와는 거리가 멀어요. 다만 맥주와 함께하는 저녁 '혼술'은 꽤나 즐기는 편입니다. 제 생각에 저녁 '혼술'의 장점은 하나둘이 아니에요. 누군가와 페이스를 맞출 필요도 없고, 별다른 안주를 준비할 필요도 없이(저는 간단하게 새우깡이나 나초칩을 안주로 즐겨 먹습니다), 재미난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혼자 깔깔대며 술을 홀짝이는 재미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아는 '꿀잼' 포인트입니다.
많이 마실 필요도 없어요. 500ml 1캔이면 충분합니다(저는 체질상 '알쓰'에 가까워서 많이 마시질 못합니다). 1캔 다 마시면 살짝 열이 올라 얼굴이 빨개지고 머리가 다소 어지러운 알딸딸한 상태로 잠자리에 들게 되는데, 이 경우 잠도 잘 옵니다. 맥주 1캔이 저에겐 가성비 갑의 수면유도제인 셈이죠.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너무 자주 마시면 살이 많이 올라요. 과자 많이 먹으면 못생기게 살이 찐다는 김혜수 배우의 말처럼, 외모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편이랄까요. 그래서 가능하면 1주일에 두어 번 정도만 저녁 '혼술'을 즐기는 것으로 나 자신과 약속을 해두었답니다.
그런데요, 희한하게도 저녁 '혼술'은 아무렇지 않은데 낮 '혼술'은 잘 안 하게 되더라고요. 낮술을 하게 되는 일 자체도 드물지만, 혹 하게 되더라도 친구들과 함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런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낮에 '혼술'을 하는 건 왠지 모를 죄책감을 유발한단 생각도 들었고요. 또 혹시나 운전할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낮 '혼술'을 멀리한 이유 중 하나였어요. 그러다 보니 '혼술=저녁'이라는 등치관계가 제 머릿속에 굳건하게 자리 잡게 됐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설가 김연수의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을 읽고 있는데, 이런 대목이 나왔어요. "어른들이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일 위주로 생활하면 인생에서 후회할 일은 별로 없다. 늙을수록 시간은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가능한 한 빨리 해야만 한다" 이 말대로라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늙어 시간이 별로 없는 저는, 생각한 바를 바로 실행에 옮겼어요. 마침 점심시간이었거든요.^^
점심 대신 500ml 맥주 1캔을 냉장고에서 꺼내서 맥주 안주로 사뒀던 나초칩에 치즈를 곁들여 호로록 마셨습니다. 빈 속이라 그런가 맥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게 그대로 느껴지더군요. 몸에 흡수되는 속도도 굉장히 빨랐어요. '낮술은 몸에 더 잘 흡수되나?'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요. 그리고 오래지 않아 몸이 나른해지고 기분이 '업' 됐습니다. 더 좋았던 건 뭔가 내 맘 속에서 '이건 하면 안 돼'라고 선을 그어뒀던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났다는 성취감, 사소한 관점의 변화가 가져다주는 행복감이 밀려왔다는 거예요.
누군가는 '낮에 '혼술' 한 번 한 게 뭐가 대단하다는 거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그 자체로 새롭고 재미난 도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일탈이 일상에 얼마나 큰 활력소가 될 수 있는지를 깨닫는 계기이기도 했다는 걸 강조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