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작은 성취를 누리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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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반복하는 루틴이 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몸무게를 재고, 유산균 한 봉지를 입에 털어 넣은 후 미지근한 보리차를 마십니다. 그리곤 부엌으로 와 다이어트 보조제 한 알을 먹고 아침식사를 준비합니다. 블루베리 몇 알, 양상추 한 줌, 삶은 계란 한 개. 여기에 양배추와 방울토마토를 넣고 올리브유에 볶은 스크램블드에그를 더합니다. 식빵 한 조각을 토스터에 구워 곁들이면 오늘의 아침식사 완성! 예쁘게 식탁 위에 차린 나만의 아침을 기록 용도로 촬영하고 트레이너가 개설한 네이버 밴드에 사진을 올리는 것으로 아침의 루틴은 끝이 납니다.
얼마 전부터는 여기에 하나의 루틴을 추가했습니다. 오랜만에 예약 구매한 책 <이어령의 말>을 5~10 페이지 정도 읽고, 함께 구매한 필사노트를 한 페이지씩 작성하는 일입니다. <이어령의 말>은 이어령 선생의 생전 철학과 언어가 담긴 사전 같기도 하고 아포리즘 같기도 한 책이라 조금씩 끊어 읽어도 부담이 없습니다. 오히려 선생의 말을 찬찬히 음미하고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라, 몇 페이지씩 나눠 읽는 게 훨씬 기껍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에 비하면 필사노트는 일종의 변덕에 가깝습니다. 글씨를 잘 쓰는 편이 아니라 인터뷰할 때가 아니면 직접 기록하는 일이 드물고, 필사는 더더군다나 멀리 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책을 구매하면서 유료 사은품인 필사노트를 보고, '한 번쯤은 해봐도 좋으려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책을 받은 후 매일 한 페이지씩 필사를 해나가는 중입니다. 오늘은 '디지로그'에 대한 내용을 필사했습니다. 매일 필사노트에 적힌 이어령 선생의 아포리즘을 뒤적여가며 '오늘은 뭘 필사할까?' 정하는 것도 즐겁고(원래는 필사노트도 정해진 순서가 있지만, 저는 제 기분 내키는 대로 그날 필사할 몫을 고르고 있습니다), 약 5분 여의 시간 동안 정성 들여 필사를 하는 기분도 근사합니다. 선생의 말이 내 온몸으로 깊숙이 흡수돼 좀 더 나은 내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이런 루틴이 자리 잡기까지 숱한 반복을 거듭해야 했지만, 시간은 언제나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쌓여 루틴이 되고, 매일 그 루틴을 지키는 것만으로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시작했네'라는 성취감이 밀려옵니다. 기껏해야 한 시간 남짓, 나를 위해 준비한 나만의 시간이 오늘의 나를 더 충만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