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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루틴

-매일 작은 성취를 누리는 기분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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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반복하는 루틴이 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몸무게를 재고, 유산균 한 봉지를 입에 털어 넣은 후 미지근한 보리차를 마십니다. 그리곤 부엌으로 와 다이어트 보조제 한 알을 먹고 아침식사를 준비합니다. 블루베리 몇 알, 양상추 한 줌, 삶은 계란 한 개. 여기에 양배추와 방울토마토를 넣고 올리브유에 볶은 스크램블드에그를 더합니다. 식빵 한 조각을 토스터에 구워 곁들이면 오늘의 아침식사 완성! 예쁘게 식탁 위에 차린 나만의 아침을 기록 용도로 촬영하고 트레이너가 개설한 네이버 밴드에 사진을 올리는 것으로 아침의 루틴은 끝이 납니다.


KakaoTalk_20250309_092230093_01.jpg 오늘 아침. 식사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20여 분의 시간은, 온전히 나 자신에 집중하는 시간입니다.


얼마 전부터는 여기에 하나의 루틴을 추가했습니다. 오랜만에 예약 구매한 책 <이어령의 말>을 5~10 페이지 정도 읽고, 함께 구매한 필사노트를 한 페이지씩 작성하는 일입니다. <이어령의 말>은 이어령 선생의 생전 철학과 언어가 담긴 사전 같기도 하고 아포리즘 같기도 한 책이라 조금씩 끊어 읽어도 부담이 없습니다. 오히려 선생의 말을 찬찬히 음미하고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라, 몇 페이지씩 나눠 읽는 게 훨씬 기껍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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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예약 구매한 책. 필사노트까지 세트로 구매한 책은 처음입니다. 조금씩 읽어도 부담이 없어 마음에 듭니다.


그에 비하면 필사노트는 일종의 변덕에 가깝습니다. 글씨를 잘 쓰는 편이 아니라 인터뷰할 때가 아니면 직접 기록하는 일이 드물고, 필사는 더더군다나 멀리 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책을 구매하면서 유료 사은품인 필사노트를 보고, '한 번쯤은 해봐도 좋으려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책을 받은 후 매일 한 페이지씩 필사를 해나가는 중입니다. 오늘은 '디지로그'에 대한 내용을 필사했습니다. 매일 필사노트에 적힌 이어령 선생의 아포리즘을 뒤적여가며 '오늘은 뭘 필사할까?' 정하는 것도 즐겁고(원래는 필사노트도 정해진 순서가 있지만, 저는 제 기분 내키는 대로 그날 필사할 몫을 고르고 있습니다), 약 5분 여의 시간 동안 정성 들여 필사를 하는 기분도 근사합니다. 선생의 말이 내 온몸으로 깊숙이 흡수돼 좀 더 나은 내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KakaoTalk_20250309_092230093.jpg 오늘 필사한 내용. '아침'에 대한 내용이 나와 선정했습니다.




이런 루틴이 자리 잡기까지 숱한 반복을 거듭해야 했지만, 시간은 언제나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쌓여 루틴이 되고, 매일 그 루틴을 지키는 것만으로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시작했네'라는 성취감이 밀려옵니다. 기껏해야 한 시간 남짓, 나를 위해 준비한 나만의 시간이 오늘의 나를 더 충만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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