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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욕구와 부모의 계산기

다 해주고 싶지만 현실은... 그러나 부족함은 가능성이 된다

by 담연 이주원

아이를 키우다 보면 ‘욕구’와 ‘계산기’가 하루에도 수십 번 부딪힌다. 아이들은 서로를 비교한다. 그리고 갖고 싶고, 경험하고 싶고, 떠나고 싶고, 더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부모에게 서툴게 표현한다. 부모는 그때마다 해야 할 일과 지갑 사정을 따져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계산한다.


남매둥이는 장난감이 아이들 눈높이에 잘 진열된 아파트단지 상가 무인가게 앞을 지나치지 못한다.

아빠 손을 이끌고 들어가서 “아빠, 이거 사줘!”

아이의 눈빛은 반짝이고, 내 손을 꼭 쥐어본다. 소유하고 싶은 욕구는 너무 당연하다.


그 순간 부모의 머릿속은 계산기로 바뀐다.

“셋이니까 하나씩 사주면 곧 만 원, 두 번이면 이만 원…”

아이의 욕구는 순수한데, 부모의 계산은 현실적이다.


“제주도 몇 번 가봤어?”

놀이터에서 절친과 뛰놀다 들어온 다온이가 갑자기 물었다.

“아빠, 우리는 제주도 몇 번 가봤어?”

"한 번 갔었지."

내 대답에 1호는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고만 있다. 돌이 채 되기 전에 떠났던 제주도 여행이니 다온이 머릿속에 기억은 없다. 사진으로만 기억된 여행이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다온이가 말했다.

“OO는 열 번이나 갔다는데!”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래도 다온이는 해외여행 가봤잖아. 한 번이지만.”

그런데 아쉽게도 18개월에 떠난 여행이라서 다온이 기억에 또 없다. 그리고 남매쌍둥이가 생겼고 가족여행은 상상할 수도 없는 육아전쟁을 치렀다. 이제 조금 한숨을 돌리고 있지만 우리에게 삼남매 가족여행은 쉽지 않은 도전이 되어버렸다.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여행 횟수조차 비교의 대상이다. 심지어 해외여행을 못 가본 친구들을 가리키는 신조어까지 유행한다.
“개근 거지.”

이 말은 단순히 농담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여행 경험이 성적표처럼 소비되는 풍경은 내 어릴 적 기억을 소환한다. 국민학교 시절, 부모님의 학력이나 집에 TV·냉장고가 있는지 같은 호구조사가 당연시되던 반인권적 장면들. 그때는 별문제라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사회적 낙인이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비교를 통해 자기 위치를 확인한다. 중요한 건 비교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더 중요한 건 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이다. “나는 부족하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더 해볼 수 있다”는 기대와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비교는 성장의 계기가 된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개근 거지” 같은 말은 단순한 비교를 넘어 낙인이 된다. ‘문화적 자본’을 기준으로 서열을 매기는 것이고, 사회심리학적으로는 ‘낙인 효과’가 작동하는 것이다. 결국 어린 시절 여행 횟수가, 그 시간을 다른 경험으로 채운 아이의 삶보다 더 가치 있다는 편견이 자리 잡는다. 이런 문화가 굳어지면 “해외여행을 못 가본 아이는 뒤처진 아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겨 자존감과 성취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비교는 본능이지만, 비교를 빌미로 특정 집단을 비난하거나 배제하는 문화는 지양해야 한다. 무심코 받아들이면 안 된다.


아이들은 또래와 끊임없이 경쟁한다. 누가 더 빨리 달리나, 누가 더 문제를 잘 풀었나, 누가 더 자주 여행을 갔나. 경쟁은 때로 아이를 지치게 하지만,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핵심은 경쟁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스스로를 깎아내릴 수도 있고, “다음엔 더 잘해보자”라는 도전으로 삼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결과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이가 받아들이도록 돕는 것이다.

“넌 머리가 나빠서 그래.”
“넌 성격이 안 좋아서 그래.”
“넌 게을러서 그래.”

이런 말은 결과가 영원히 지속될 거라는 잘못된 낙인을 심는다. ‘개근 거지’도 마찬가지다. 부모를 바꿀 수 없기에, 그 결과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메시지로 작동한다. 대신 행동에 초점을 둔 말이 필요하다. “이번엔 덜 준비됐네, 다음에 준비하면 돼.” 행동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가 일시적이라 느끼고 바꿀 수 있다고 확신이 들면 아이는 도전하고 성장한다.


여하튼 삼남매가 되면서 여행도 줄었고, 우리 아이들은 학교와 유치원에 개근한다. 올해에는 딱 하루 체험활동(태백 여행)으로 빠졌다. 남매둥이가 태어나기 전 우리 부부는 훌쩍 떠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교통비·숙박비·입장료 모두 세배다. 특히 숙박은 5인이면 예약도 가격도 모두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삶은 현실이니...

더 꼼꼼히 계산한다. 아내보다 내가 더 꼼꼼히 계산한다. 장난감은 꼭 필요할까? 여행은 지금 가야 할까? 아이 욕구는 크고, 지갑은 얇다. 이 줄다리기 속에서 부모는 늘 마음 한켠이 무겁다. 유치원 OO처럼 비행기 타고 멀리 여행가고 싶다는 2호 한준이의 외침에 초라함과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묘한 다짐이 스쳐지나간다.


빈곤의 역설 – 결핍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심리학에는 이런 말이 있다. ‘빈곤의 역설’. 지나친 풍족은 오히려 동기를 앗아가지만, 적당한 결핍은 성장을 자극한다는 뜻이다.


없는 것을 채우고 싶은 욕구가 아이를 더 튼튼하게 만든다. 부족한 경험은 상상력의 여백이 된다. 아직 못 가본 곳이 많다는 건 앞으로 즐거움이 많이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모는 때로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성장은 풍족함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부족함은 아이에게 새로운 길을 찾는 힘을 길러준다. 그리고 마지막 선진국이라 불리는 곳에 우리는 살아가니 이전보다 정말 많은 경험의 기회가 있다. 조금만 시간을 내어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지원해 줄 기회는 충분하다.


돈 들이지 않고 경험하는 법 – 주변을 다시 보기


다행히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경험할 수 있는 길은 많다. 학교 공지사항만 꼼꼼히 봐도 캠프, 무료 체험, 교육청 프로그램이 수시로 열린다. 도서관, 지역 아동센터, 지자체 프로그램, 각 부처에서 진행하는 행사들도 의외로 알차다. 물론 지자체마다 차이가 커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때도 있다. 옆 지자체는 방학 영어캠프가 무료인데, 우리 지자체는 20만 원이니 억울할 때도 있다(ㅠㅠ). 그래도 감사하다.


아이는 작은 캠프 한 번, 동네 도서관 체험 한 번에도 크게 자란다. 부모가 지갑을 열지 않아도, 주변에서 손만 내밀면 잡을 수 있는 경험이 많다. 중요한 건 그 경험을 어떻게 연결해 주느냐, 그리고 아이가 거기서 무엇을 느끼도록 돕느냐다.


아이 욕구는 멈추지 않는다. 비교하고, 갖고 싶어 하고, 경쟁한다. 부모는 계산기를 들고 현실을 따져본다. 그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은 당연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많이 못 가봐서 아쉽다”가 아니라 “앞으로 갈 곳이 많아.”


나는 삼남매가 이런 낙관성을 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더 노력해야 한다. 아내는 이미 충분히 낙관적이니 말이다.


부족함은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부모가 이렇게 해석해 줄 때, 아이는 욕구와 비교 속에서도 자기 길을 긍정적으로 걸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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