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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서진 Oct 19. 2022

15. 박서진로

 


    

  좀돌팥을 뽑느라 서진로를 가본 지 꽤 되었다. 주로 해가 뜨기 전에 산책하는 길이다.

  [박서진] 로라 명명한 그 길은 아파트 쪽문이 생기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길이 되었다. 쪽문을 나가면 공원과 메타세쿼이아 길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쪽문이 처음부터 나 있던 건 아니었다. 바로 뒤에 버스정류장도 있어 입주 때부터 민원을 넣었지만 아이들이 그쪽으로 나가거나 외부 사람들이 들어 올 수도 있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이 많아 보류되었다. 그런데 다시 투표를 해 쪽문을 만든 것이다.

  쪽문으로 서진로를 나가면 그 길은 육교와 저류지를 지나 기지재까지 연결되어 있다. 기 지재는 전주에서 야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선정되기도 한 길이다. 겨울에는 철새들이 많이 찾아오기도 하는 곳이다.

  기운도 없는 데다 약간의 무기력증도 있었던 나는 숨쉬기 운동밖에 하지 않았었다. 남편이 사준 스마트 워치를 차게 되었는데 내가 하루에 움직이는 걸음은 500보 이상이 되지 않았다. 눈으로 확인을 하니 심각성이 확 느껴져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마침, 쪽문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좀돌팥을 뽑으면서 당연히 서진로에도 침범을 했는지 살폈다. 아파트 담장 주변으로 깔려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기 지재 가는 것을 포기하고 메타세쿼이아 길부터 초등학교로 건너가는 횡단보도까지 선을 정하고 좀돌팥을 뽑았다.

  몰랐을 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좀돌팥이 사방에 깔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멈춰 섰지만 범위가 너무 넓어 결국 손을 들었다. 기지재를 지난 작은 공원의 철쭉을 휘감는 걸 차마 지나칠 수 없어 한 시간이 넘게 앉아 뽑아 주었을 뿐이었다. 그 옆의 가시나무는 손도 못 대서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돌리고 간다.

  오래간만에 서진로를 지난다. 그냥 지나는 길이 아니라 내 손길과 발자국이 찍히니 진짜로 내 길이 된 것 같다. 나는 이 길을 모두에게 허용하고 있도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같이 향유하기를 바라노라 호기를 부리면서.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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