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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서진 Oct 19. 2022

16. 피의 향연

  

  오늘은 두통이 아니라 모기 때문에 잠이 깼다. 벌써 몇 군데가 나도 모르게 헌혈되었다. 내 동의도 없이 피를 나눈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파리채를 들고 아무리 둘러봐도 모기는 보이지 않는다. 훈련을 단단히 받은 용병인지 왱왱 소리도 안 낸다.  

  새벽 4시 40분이다.

  더 잘까?

  일어날까?

  파리채를 들고 서성이다 컴퓨터를 켰다.

  앗!

  열심히 뉴스를 보고 있는데 왼쪽 시야로 무언가 휙 지나가는 게 보였다.

  모기닷!

  작고 시커먼 모기 한 마리가 둔하게 날고 있었다. 책상 밑에 숨어 있다 날아오른 듯했다. 날카로운 내 눈 레이더망이 작동을 하고 있으니 모기는 구석에 몰린 쥐닷!

  파리채로 잡으려다 손바닥 안에 가두려고 짝짝 손뼉을 쳤다. 헛! 역시 용병 모기답게 잘도 빠져나가 숨어 버렸다.

  파리채를 들고 여기저기 두드려 보았다. 그러자 이불 위로 모기가 날아올랐다.

  이때다!

  오른 손바닥과 왼손바닥이 이때처럼 잘 맞아떨어진 적이 어디 있었을까?

  짝! 소리와 함께 모기의 인생은 끝이 났다.     

  손바닥을 펴자 형제를 죽인 피의 향연이 낭자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체를 휴지에 싸서 쓰레기 통속에 집어넣고서야 호기롭게 침대 속으로 쏙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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