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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서진 Oct 19. 2022

14. 로또

    

   오전에 오는 학생 수업이 끝났다. 바람도 불고 날도 흐려 학교로 데려다주려고 하는데 남편이 나간 김에 점심을 먹고 오자고 하였다.

  학생을 내려주고 돌다 음식점을 찾고 있는데 머리가 아프다는 신호가 왔다. 어제는 잠도 푹 자고 컨디션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 머리가 아파 오다니! 오른쪽 어깨가 살짝 아파오면서 위도 아려왔다. 이럴 때는 위가 아파서 두통이 오는 건지 어깨가 아파서 두통이 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두 번을 먹지 않으려면 빨리 약을 먹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뿐이다.

  떡갈비와 매생이 떡국을 시켜서 나눠 먹고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진통제를 삼켰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말을 툭 던졌다.

  “일을 줄이던지 마음을 편하게 먹어 봐.”

  우리는 연금도 쥐꼬리만큼 밖에 안 나온다. 남편은 놀고 있다. 그러니 일을 줄이라는 것은 굶으라는 말과 같다.

  “일을 줄이면 어떻게 살라고.”

  “그냥, 되는대로 사는 거지 뭐.

  그러니까 그냥 되는대로 어떻게 산다는 것인가? 남편은 늘 대책도, 대안도 없는 말만 한다.

   속으로 뚱해 있는데 남편이 방에서 서랍 하나를 빼 왔다.

  세상에나!

  서랍 안에는 각종 복권이 꽉 차 있었다. 긁는 것부터 시작해서 로또에서, 연금복권까지!

  나는 얼른 동전을 꺼내와 복권을 긁었다. 남편은 연금복권에 찍힌 호츠 켓을 뺐다. 그리고 로또와 분리를 해 놓았다.

  긁는 복권은 두 개의 그림이 맞으면 최고 20억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긁는 것마다 그림이 짝짝이다. 4천 원짜리도 아닌 어쩌다 겨우 2천 원짜리만 나왔다. 그것도 열 장쯤 꽝이 나온 뒤 나오는 수확이었다. 내가 도술을 쓰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살짝 자리만 바꿔 놓으면 20억짜리가 될 텐데.

  마지막에 운 좋게 2만 원짜리가 나와 본전 3분의 일만큼은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로또는 오천 원짜리 두 장밖에 안 맞았다. 한 주도 안 빠지고 사서 6개월을 모았다는데 어찌 그리 안 맞을 수 있단 말인가? 로또는 정말 나랑 하나도 안 맞는 남편과 똑같다!

  연금복권은 더 심했다. 큐알 코드로 척척 맞춰가는데 맞는 게 거의 없었다. 복권에는 여러 가지 글귀가 쓰여 있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당첨금을 쓰겠습니다]

  나도 그러고 싶다고!

  [믿기지 않는 1등 당첨! 아내와 기쁨을 함께하겠습니다.]

  한 사람이 돈을 갖고 튈까 봐 안 되는 걸까?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요.]

  우리 조상은 나라를 구한 사람이 없었던 걸까?

  [꿈속 할머니의 미소가 당첨의 행복으로]

  돌아가신 우리 조상들은 뭘 하고 계신 것일까?

  꽝이 된 복권들이 뽑아 놓은 좀돌팥 더미처럼 쌓였다. 좀돌팥 줄기를 뽑아내면 성취감이라도 있지만, 꽝이 된 복권은 허무함과 상실감만 주었다. 차라리 복권 살 돈을 모아 두었더라면 먹고 싶은 걸 실컷 사먹을 수 있었을 텐데.

  남편은 내가 자판기를 두드리면 그것 때문에 힘들고 스트레스받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은 모른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니 내가 줄여야 하는 것은 글 쓰는 일이 아니라 돈을 버는 일이다. 하지만 놀고 있는 남편에게 차마 그 말은 못 하고 쓰레기가 된 복권 종이들을 분리수거 상자에 집어넣었다.

  로또가 안 맞았으니 난 또 열심히 일하면서 글을 써야 할 것이다. 글을 쓰면서 성취감을 느끼니 어쩌면 그 일이 내게 로또 인지도 모르겠다 위안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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