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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신 Aug 01. 2021

너를 봤을 때 내 첫사랑이 떠올랐어

이십칠 개인전

이 글은 부산의 전시공간 영영에서 2021년 8월 15일까지 열리는 이십칠 작가의 첫 개인전 《너를 봤을 때 내 첫사랑이 떠올랐어》(2021. 7. 16 ~ 2021. 8. 15)의 글입니다.



    이십칠은 주로 작은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 그리는 것이 늘 드로잉은 아니지만, 그의 그림에는 켜켜이 쌓아 두었던 흔적이 보인다. 쌓아 둔 흔적이란 그의 그림에 담긴 감정이 포개 놓은 일기장을 닮았다는 의미다.   


    이십칠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 잠깐 다른 예술가의 이야기를 해보자. 화가 조지 콘도는 드로잉을 선호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회상한다.


“처음으로 유화 물감을 샀던 때가 기억이 난다. 그림에 쓰인 테레빈유과 기름, 유화 물감이 집 안 곳곳에  펼쳐져 난장판이 되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것을 내 침실에 두게 했다. 집안에 널브려 놓지 못하도록. 그러나 드로잉은 어디서든 공책에 그릴 수 있었고, 표지를 덮어서 책상 서랍에 넣어 둘 수도 있었다. 물감으로 그린 그림은 세워서 마르게 두어야 하고, 누구든 와서 화가가 무엇을 하는지를 보게 되지만 드로잉은 개인적인 것이라 아무도 볼 수 없었다.” - 조지 콘도 - 1)


    거대한 캔버스와 작은 종이에 그려진 그림의 결은 이렇게 다를 수밖에 없다.


    눈물은 젖어서 축축해지고 늘어지다가 이내 찢어지고 마는 것들이 닦아 준다. 슬플 때는 말랑하고 보드라운 것을 찾게 된다. 그의 그림의 감성은 학창 시절 딱딱한 책상에 엎드려 떨어트린 눈물방울을 닮았다. 몇 번 무심히 문지르기만 해도 살갗이 일어나는 취약한 종이. 그 위에 비릿한 형상으로 물감이 뭉쳐져 있다.

    살아 있는 것에서 배어 나온 물기는 금세 사라지지 않으며, 대개 첫 키스나 첫사랑과 같은 인생의 강렬한 기억에 닿아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 《너를 봤을 때 내 첫사랑이 떠올랐어》는 작가가 한 소아성애자에게서 들은 첫 마디에서 가져온 것이다. 어렸을 때 들은 그 말을 이십칠은 이후에도 복합적인 감정과 함께 반복해서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성장한 그는 자신의 퀴어 정체성과 전에는 몰랐던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알게 되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 한용운 「님의 침묵」- 2)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님’은 대개 조국 혹은 종교적 이상으로 해석되지만, 시에서 떼어 낸 이 글귀만큼은 성장통을 겪어야 했던 이십칠의 학창 시절과 닮아 있다. 그러나 한용운의 시가 미래에 님을 만나고자 하는 다짐을 담고 있다면 이십칠의 밝은 표현 방식 이면에는 떠나보낸 이에 대한 슬픔이 담겨있다. 이처럼 작가가 느끼는 우울은 이별의 슬픔에 더해 감정을 표출하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기인한다. 그는 타인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일이 자신에게 어렵게 된 이유를 반복하여 곱씹는다. 그것은 존재의 부정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여성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오래전 이미 학계는 동성애를 정신 질환이 아니라고 판명했으나3) 이십칠은 주변의 편견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청소년기부터 이어오던 끊임없는 질문을 작업에 담았다. 2014년의 영상 작업 <검은 나>에 등장한 ‘나’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과거에 다녔던 고등학교를 배회한다. 검은 천을 뒤집어쓴 모습은 상념 속에 출몰하는 불가해한 자아를 형상화한 것이다. 한편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만화체는 미결로 남은 작가의 학창 시절을 그리기 위한 것으로, 학교를 배경으로 한 그림에는 울멍울멍한 눈과 연약한 몸을 지닌 청소년 이반들이 나온다. 그림 속 세계에는 교사나 부모 없이 아이들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친구 혹은 애인과 함께 있거나 누군가를 피해 텅 빈 교실 안에 몸을 숨기고 있다.

    이와 더불어 사각형으로 구획된 방이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작가에게 방은 물리적인 공간이라기보다 내면의 심리적인 공간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의 그림에서 그는 자신의 캐릭터를 방 안에 형상화했으며, 연장선상에서 이번 전시는 2019년에서 2020년 사이에 제작된 <Heart-Image> 연작 27점을 공개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방을 직접 그리지 않고 종이의 직사각형 화면을 방으로 삼아 바닥에 설치한 후 그 위에 인형 오브제를 올려 두었다.


    작가는 이처럼 자신의 내면과 기억 속의 단편을 그린다. 그는 연약한 재료로 “스러지는 이미지”4)를  만들어 영구적이면서도 취약한 사랑의 속성을 드러낸다. 인형의 집처럼 꾸민 공간 안에서 생일 초가 꺼져가는 장면을 찍은 <happy. 13. I love you.>(2015, 비디오), 그리고 부패하는 생일 케이크가 오브제로 쓰인 <happy birthday>(2016, 설치)의 경우가 그러하다. <꽃밭>(2017, 비디오)에서도 희망과 사랑을 의미하는, 색색으로 칠한 종이 꽃잎이 외화면으로부터 뿌려진 물에 녹아 연약하게 허물어진다. 한편 작품의 재료는 테이프나 실 등으로 고정되는데 그마저도 살짝 얹어지는 정도라 금세 떨어져 나갈 것처럼 보인다. 2020년의 ‘실 오브제’ 작업에서 작가는 늘어뜨린 실에 알파벳 스티커를 붙여 끊기는 낱말을 문장으로 이었다. 숨을 멈추고 가만히 바라보아야 하는 글귀는 공기의 미세한 흐름에 따라 움직이면서 더욱더 읽기 힘든 메시지가 된다. 메시지의 내용은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과 ‘당신(You)’에 관한 것으로, 두 장의 스티커가 마주 붙어야 완성되는 오브제는 그래서 더 우울감을 남긴다. 이러한 이십칠의 태도는 바바라 크루거와 같은 작가가 공공장소에 선언적인 구호를 제시한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소리를 내지 않는 입말 같은 메시지, 표면이 까진 종이처럼 자세히 보아야 하는 이미지는 사회 속에 모습을 숨긴 채 살아가는 이반을 닮았다.


    그러나 그의 스러지는 이미지 뒤에는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다. 구슬핀의 양쪽 끝이 빛나는 부분과 날카로움을 함께 지니듯 상반되는 성질은 작업에 공존하며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한 예로 <Heart-Image> 시리즈의 화면은 펠트와 종이에 펀치로 구멍을 뚫거나 칼집을 내고 할핀을 꼽는 행위로써 만들어졌다. 한편 그 위에 올린 인형에도 스팽글과 구슬핀이 촘촘하게 박혀있는데, 화려한 핀의 끝이 인형 내부를 향하듯 날카로운 공격성이 암시되며 보이지 않는 내면의 상처를 짐작하게 한다. 푹신한 재료를 찌르는 작업의 과정에서 작가는 타의와 자의로 만든 흔적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낫지 않은 상처를 다시금 복기했을 것이다.


    이러한 양가감정은 작가가 겪은 폭력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소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이십칠에게 중요한 기억 중 하나는 종교인을 꿈꾸던 이반 친구에 대한 것으로, 작가는 떠나보낸 친구를 기억하며  <나만은 너와 나 우리의 절망을 기억해야만 한다>(2020, 비디오)를 제작했다. 그는 친구가 준 반지를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컴퓨터로 수치화해 모델링했으며 그것으로 다시금 동영상을 만들었다. 작가에게 있어 디지털의 세계는 물리적인 현실보다 영구적인 곳으로, 그는 디지털화된 파일을 계속해서 손에 붙잡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작가가 사회적인 편견으로 괴로워하던 친구를 떠나보낸 뒤 규명하기 어려운 슬픔과 죄책감을 느낀 것 처럼 퀴어의 우울은 개인적인 감정의 문제로 소급되지 않는다.5) ‘나는 젠더가 아니라 분노감을 가진다’라는 메시지가 색색의 큐빅으로 배열된 <무제>(no.10 - I HAVE NO GENDER ONLY RAGE, 2019)에는 작가의 정치성이 더 직설적으로 표출되어 있다. 그는 억압의 상황 속에서 개인이 해소할 수 없는 감정을 가시화하고, 그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회신을 기다린다.


    이십칠은 동료들과 있을 때는 범주로 분류되지 않으나 일반을 만나 이반이 되어버리는 사회적 현실을 문제시하며 퀴어라는 범주를 넘어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이미 초기 영상 작업에서 홀로 쓸쓸히 교정을 배회하던 ‘검은 나’로부터 발견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린 ‘나’는 무엇으로 변화할지 모르는 미규정의 상태로, 뒤집어쓴 검은 천은 오히려 상반되어 보이는 다채로운 코스프레와 접점을 지닌다. 20대 초반 이십칠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가 되는 코스프레를 통해 유연한 젠더의 가능성을 탐험했으며, 최근에는 매끈한 캐릭터의 이미지를 진득한 물감으로 전유하거나 완벽한 신체를 파편화하여 무한한 정체성이 부유하는 유토피아적 풍경을 그려냈다. 그리고 이제 그는 개인이 개인으로서 가능한 가상 세계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지평을 확장 중이다.


    이십칠은 현재와 과거를 끊임없이 오가며 굳어버린 과거를 다르게 결말지으려 한다. 접힌 기억을 펼친 그림에는 끈적하게 달라붙은 낱장의 일기를 떼어  흔적이 남아 있다. <나만은 기억해야만 한다>(2020, 비디오)에서처럼, 한때 사랑과 우정으로 부풀었던 감정은 날카로운 것에 찔려 바람이 꺼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하나 그럼에도 마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은 것을 품은  자신의 형태를 부풀려 간다. 여린 내면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우그러든 마음을 키우는 힘은 이십칠의 회복력이자 타인에 대한 사랑이다. 그는 어쩌면 사랑했던 이들을 닮아 자신도 부드러운 것이 되어 관객의 공감을 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물은 가장 연약한 것들이 닦아 준다.




전시:《너를 봤을 때 내 첫사랑이 떠올랐어》

작가: 이십칠

기간: 2021. 7. 16 ~ 2021. 8. 15  pm 1~7 (월, 화 휴무)

공간: 전시공간 영영 (부산광역시 수영구 망미번영로 52번길 5 지하 1층)

글:  윤형신

포스터: 소쇄



1) 2017년 9월 캐스퍼 벡 뒤크(Kasper Bech Dyg)가 진행한 조지 콘도(George Condo, 1957~)의 인터뷰, ‘The Way I Think’, https://www.youtube.com/watch?v=BhRdlVcQnjk&t=517s (2021. 7. 14 검색).

2) 이 글에서는 한용운(1879~1944)의 「님의 침묵」의 여러 판본 중 현대 한국어로 다듬어진 글을 인용했다. 한용운, 『님의 침묵』, 꽃마리 편, 유페이퍼, 2020, p. 10. 발간 당시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날카로은 첫 「키쓰」의 追憶은 나의 運命의 指針을 돌너노코 뒤ㅅ거름처서 사러젓슴니다” 한용운, 「님의 沈默」, 1926.

3)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동성애를 DSM(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에서 삭제했다. 서영석, 이정림,  강재희, 차주완, 「상담자의 동성애혐오반응에 관한 연구」,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19, 2007, p. 214.

4) 2021년 5월 23일에 진행한 작가 인터뷰.

5) 서영석 외, 위의 글, p.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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