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칼럼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작은 아이가 내게 “용서할 수 없어.”라고 외쳤다. 분노하는 아이는 절대 무엇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아이의 분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꿈속의 내가 아이에게 말했다.
“용서할 수 없겠지만, 용서한다면 더 큰 사랑을 지킬 수 있을 거예요.”
그것은 나의 꿈이었다. 분노하는 이도, 그 분노를 받아들이며 조언한 이도 모두 나의 마음속이었다. 아주 깊은 무의식들이 튀어나온, 그야말로 ‘꿈’, 그 자체. 꿈에서 깨어난 나는 내가 꿈에서 한 말을 되짚어보았다. ‘용서한다면, 더 큰 사랑을 지킬 수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그 말을 했다. 내가 용서로 지킨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과거를 떠올렸다.
용서를 몰랐다
열여덟,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새벽 네 시,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기에 받지 않았다. 이내 한번 더 전화가 오고 받지 않자, 이어 문자가 왔다. ‘고모다. 니 아빠가 지금 위독하다. 전화 줘라.’ 짧은 문자였다. 나는 바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태어나서 처음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안부는 묻지 않았다. 대신 급한 목소리로 아버지의 상황이 전해졌다.
“글쎄 술을 먹었는데, 식도가 파열됐단다.
지금 수술 중인데, 가망이 없을 것 같단다. 빨리 와라.”
나는 부랴부랴 오빠를 깨웠다. “오빠, 아빠 돌아가실 거 같대.” 짧은 말이었다. 오빠 역시 벌떡 일어나 급하게 옷을 주워 입었다. 열여덟의 나와 스물 하나인 오빠는 해도 뜨지 않은 시간, 택시를 잡았다. 병원으로 가는 길 내 마음은 복잡했다.
수년을 자식들을 뒤로했던 아버지였다. 그나마 있던 어린 시절 추억조차 모두 슬픔으로 만들어버린 사람이었다. 제대로 불러본 적 없는 것 같은 사람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더욱 해본 적이 없었다. 한편으론 원망했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만든 것에, 나를 사랑하고 원했다는 것에 원망했다. 기다리고 원망하다 잊어버린 사람이었다. 내 삶에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수술을 받는 동안 친척들이 모였음에도 아버지의 자식들 번호 하나 가진 사람이 없어 돌고 돌아 겨우 연락이 닿은 것이 나였다고 했다. 모두의 삶에서 그 정도로 잊힌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래도 아버지라고 연락이 왔다. 돌아가실 것 같다고.
택시가 새벽 도로를 힘차게 가로지르는 동안, 스치는 가로등 사이로 나는 이제 무엇을 원망해야 하나 싶었다. ‘용서하지 못할 죽은 이는 없다’는 사노 요코의 말처럼 죽을 사람을 차마 원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잠시 술을 원망하기도 했고, 술을 먹게 만든 사람들 원망하기도 했고, 크리스마스를 원망하기도 했다. 갈 곳을 잃은 원망은 뿌연 창밖의 가로등 빛만큼 퍼져나갔다.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나와 오빠는 말없이 수술실 앞에 앉아있었다. 둘 다 울지도 당황하지도 않고 덤덤하게 자리를 지켰다. 친척들은 그런 우리를 가엾게 여겼다. 한편으론 무섭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자리를 덤덤하게 지키는 조금 어린 자식들의 모습이.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아침까지도 수술은 끝나지 않았다.
새벽은 대낮이 되어갔다. 그제야 열두 시간의 수술을 마치고 의사가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의 상태를 말했다. 고비를 넘겼다며 잘 회복하면 생명에 지장 없을 것이라 했다. 조금 더 기다리면 중환자실에서 면회도 가능하다고 했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기 위해 다시 기다렸다. 이윽고 면회시간, 중환자실에 누운 아버지를 보았다. 겨우 마취에서 깨어나 온갖 호스를 달고 숨을 겨우 쉬는 아버지를.
아버지의 가까이로 걸어가는 찰나까지 나는 아버지를 무슨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살았다’는 말에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지만, 죽다 살아난 아버지에게 해야 할 말은 무엇일까. 연락도 없다 덜컥 죽음이라는 것으로 자식들을 부른 아버지에게 자식이란 어떤 존재인 걸까. 넓게 퍼진 원망이 다시 살아버린 아버지를 향했다.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도 나를 보았다. 아버지는 산소호흡기 사이로 간신히 말을 했다.
“우리 딸, 보고 싶었어.”
그 한마디에 원망이 으스러졌다. 용서하지 못할 죽은 이는 없다. 겨우 숨을 쉬는 아버지 곁에서 나는 ‘죽은 이’가 되어갈 이 또한 용서하지 못할 것은 없다. 지금 용서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어떠한 마음도 가질 수 없다. 삶 모두 원망이 되고 죽음은 후회가 될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복잡함은 흘러가고 안도의 웃음이 났다.
용서로 지킨 사랑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났다. 얼마 전, 아버지는 다시 입원했다. 큰 일은 아니고 작은 수술이었다. 마취가 덜 깬 상태로 전화가 온 아버지는 내 이름을 부르며 다시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아버지에게 갔다.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마주 앉은 나와 아버지 사이 죄책감도, 원망도 없었다. 나는 마음 편히 다시 “아빠”라고 불러보았다.
용서할 수 없겠지만, 어떤 용서는 사랑을 지켜낸다. 이제 꿈에서까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나 보다.
각종 기고 및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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