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좌 사회생활백서
남들보다 덜 먹는 사람.
나를 지칭하는 단어다. 태어날 때부터 “그만 먹을래!”를 달고 살았으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더 먹어." 입에 음식을 넣어도 씹지 않는 나에게 엄마는 외쳤다.
"씹어!!!"
태초부터 소식의 기질을 타고난 내가 지금도 많이 먹지 못하는 건 이상하지 않지만, 실은 난 좀 이상하다. 거식증, 폭식증, 강박성 식이장애. 성인이 된 이후 나의 식습관을 괴롭힌 건 ‘소식’보다 ‘강박’이었다.
이 이야기는 음식을 먹는 것조차 불편해했던 내가
그나마 소식이라도 챙겨 먹도록 변화하며 사회와 살아가는 이야기다.
식이장애 환자입니다
폭식증과 거식증을 오가면서 나는 솔직하게 식이장애를 고쳐야 한다 생각하지 않았다. 거식증을 찬성하는 것도 아니지만, 굳이 따지면 고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거식증이 오면 링거를 맞으면 되고, 폭식증일 때는 먹고 토하는 것이 마음 편했으니까.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어도 계속되는 제거행동에 살이 찌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빠지지도 않았지만. 한편으로 먹으면서 살이 찌지 않는다는 것이 만족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영역이었다. 사회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식이장애는 무척이나 불편한 질환이었다. 사람들과의 식사자리. 들려오는 말. 강박적인 제거행동과 그걸 숨기기 위한 거짓말. 내가 아무리 사회와 어울리지 않는다 해도 그 모든 영역을 싹 다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느 순간 식사라는 것 자체가 불편하게 와닿았다.
아프면 해결을 해야지
“수연 씨는 불편하면 그걸 고치는 게 아니라
그 불편한 것에 익숙해지려 하는 것 같아요.”
명치를 세게 때린 것은 같은 작업실 동료였다. 새로 산 신발 때문에 발을 저는 날 보며 한 말이었다. 동료는 “구두방에 가서 고쳐요.”라고 했지만, 나는 “신다 보면 익숙해지겠죠.”라고 답했었다. 그 뒤 날아온 말.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식사 또한 불편하다 생각하면서 나를 그 습관에 맞추고 있었기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절룩거리며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간 새 신발로 고생한 적이 몇 있었으나 나는 구두방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구두방에 가면 해결되는 일이었을까. 이건 당연하지 않은 일인 걸까. 고통을 참아가며 걸음을 이어가는 도중 임시 건물로 된 구두방이 보였다. 처음이었다. 구두방에 들어가 본 것은.
구두방에 들어가자 딱 필요한 만큼의 공간이 눈에 띄었다. 안경을 낀 구둣방 사장님은 친절하지 않게 나를 맞이했다. 작은 의자에 앉자 어색함은 커졌다. 손만 뻗으면 구둣방 사장님과 닿을 것 같았으니까.
“신발을 샀는데, 발이 계속 아파서요.”
“주쇼.”
구둣방 사장님은 담백하게 내 신발을 건네받았다. 내가 보기엔 그저 새 신일뿐인데 구둣방 사장님에겐 다른 것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구둣방 사장님은 1분 만에 진단을 내렸다.
“여기 가죽 부분이 튀어나와서 뼈랑 닿은 거예요. 이것만 다듬으면 됩니다.”
그리곤 끌로 튀어나온 가죽 부분을 밀었다. 가죽이 때처럼 밀리며 후두둑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저런 걸로 신발이 편해질까 의심이 들었다. 그 신발을 신은 고통은 어마무시했으니까. 해결은 5분 만에 한 사장님은 내게 신발을 건넸다. 오천 원. 수선 가격이었다.
신발을 신고 구두방을 나서면서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선했다고 한들 몇 걸음만으로 신발이 편하다는 걸 알 수 없으니까. 그러나 다음날이 되자 알게 되었다. 불편함은 고칠 수 있다는 걸. 구두방에 다녀간 이후 그 신발은 더는 내게 고통을 주지 않았다. 한껏 편한 신발로 나를 맞이했다.
‘불편한 것을..., 고친다.’
불편한 것에 익숙해지며 살아온 행적이 하나둘 스쳤다. 그중 식이장애는 큰 기둥이었다. 매번 식사가 불편했던 나. 불편하면서도 고칠 생각은 하지 못한 나. 이것도 고칠 수 있는 걸까. 고친다면 더는 불편하지 않은 게 되는 걸까. 편안한 신발은 말했다. 불편함에, 고통에 익숙해질 필요가 없다고.
그때부터 나는 식이습관을 바꿔보기로 했다. 간헐적 단식(누군가는 간헐적 식사라고 표현했다)을 처음으로 시도해 보기도 하고 식사량과 식사 시간, 음식의 종류 등 세심하게 살폈다. 어떻게 식이습관들 들여야 이 불편함을 고칠 수 있는지 알기 위해. 프로인 구둣방 사장님은 1분 만에 신발을 진단했지만, 아마추어인 나는 일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이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는지.
그렇게 찾아낸 것이 소식좌로.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든 규칙 중 하나였다.
이 매거진은 주 2~3회 연재 이후 브런치북으로 전환됩니다.
식이장애 이야기 이후 소식에 관련된 이야기 / 소식좌 사회생활 꿀팁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작가소개 : 이수연
남들보다 '덜' 먹는 사람.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더 먹어"였다. 성인이 되어 우울증과 함께 공황장애, 식이장애를 앓았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해서도 "더 드세요"를 가장 많이 들었다. 지금은 식이장애를 극복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소식좌로 살아가고 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등을 썼다.
Insta @suyeon_lee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