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좌 사회생활백서
희망적인 스토리에는 어쩐지 거부감이 있다. 내 삶이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아서일까. ‘첫 입원’은 ‘마지막’이 되지 않았다. 다섯, 까지 세다가 지금은 몇 번이나 입원했는지 헛갈릴 정도다. 사람들이 아무리 기대에 찬 눈으로 날 말똥말똥 바라봐도 나는 그들의 마음을 무시한 채 몇 번이고 입원했다. 그들의 마음만으로 살아가기엔 버거웠다. 그들의 마음을 보고 싶지 않아 도망갔다. 덕분에 나는 병원 단골손님이 되었다.
프로 입원러
입원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나의 행적은 하나하나 쌓였다. 식사 거부. 응급실 방문. 숱한 자기파괴적 행동. 의료진이 내 의료기록을 조회하면 아마 끝도 없이 나왔을 것이다. 심지어 의사까지 거부해 전문의 주치의는 내가 입원할 때면 전공의(담당의)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 외엔 묻지 말아라’고 일러두곤 했다. 전공의의 흔들리는 눈동자란. 그 앞에 있을 때면 나는 시한폭탄이 된 기분이었다.
너가 맡아.
너가 해.
이러다 터져!
나는 한번도 화내거나 강요하듯 얘기한 적 없는데.
수간호사는 왜 자꾸 나한테 오지?
신경 쓰지 않아도 상관없는데.
“원래 웃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법이에요.”
병원에 입원한 n회차. 주치의가 말했다. 병원에서 유일하게 내가 대화하는 사람. 그 사람이 웃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며 날 보았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웃고 있었다. 이런. 날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걸 피할 수 없었다.
“간섭 많은 정신과 병동에서
아무도 다가가지 못하는 분이죠.”
훅을 날리고 주치의는 휘리릭 상담실을 나갔다. 자기객관화가 덜 된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 수 없었다. 머리를 긁적이려는 찰나, 멍 자국으로 가득한 팔이 눈에 들어왔다. 주삿바늘 자국이었다. 식사 거부에 이어 혈압까지 떨어진 날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주치의는 영양 수액을 처방했다. 삼일에 한 번 교체하는 주삿바늘은 새벽마다 간호사 분들이 한 번씩 혈관 찾기를 실패한 탓에 멍자국으로 가득했다. 이건..., 이건 좀 심했나? 병동을 둘러보았으나 수액을 달고 사는 정신과 환자는 나 하나였다. 링거에는 똑, 똑. 방울이 떨어졌다.
똑똑, 수액입니다
다음날 새벽. 해도 뜨지 않은 시간에 조심스럽게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였다. 바늘을 교체하는 날이라 다시 혈관을 잡고 수액을 놓겠다고 했다. 팔은 위부터 아래까지 잔뜩 멍이 들어 손등에 놓을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시도. 실패. 간호사가 부드럽게 미안하다는 듯이 한 번 더 혈관을 찾겠다고 했다. 나는 반쯤 눈을 감은 채 팔을 맡겼다. 두 번째 시도. 실패. 딱히 주사를 무서워하지 않는 탓에 내가 먼저 괜찮다고 했다. 이어지는 세 번째는 성공. 간호사 분이 수액을 걸며 말했다.
“이수연 님... 식사하시면 수액도 안 맞아도 되는데... 주사 맞는 거 아프지 않으세요?”
“괜찮아요.”
“수액보다 식사가 혈압 올리는 데 더 좋은데....”
“이게 편해요.”
간호사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봤다. 나름 지금도 괜찮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는데 어쩐지 무척이나 아픈 사람으로 비친 듯했다. 나는 속으로 ‘나보다 더 아픈 사람 많을 거 같은데’라고 생각했지만, 안쓰러움을 담은 그 눈빛은 진심이었다. 긁적긁적. 어색할 때 나오는 긁적임에 링거 줄이 대롱대롱 흔들렸다.
입원 생활은 수액 때문에 화장실을 자주 찾을 뿐, 적막했다. 어쩌다 가족이 면회를 올 때면 이동식 링거대를 끌고 맞이했다. 하얀 병원복에 쉼 없이 떨어지는 방울방울 수액들. 한 번은 담당의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왔다.
“배 안 고프세요?”
“배 고프죠.”
“진짜요?”
“저도 사람인데 왜 배가 안 고프겠어요.”
“그럼 배 고프신데도 안 드시는 거예요? 저는 여태까지 배가 안 고프신가 했어요.”
아니, 나도 인간인데 설마 배가 안 고플 거라 생각한 걸까. 안 먹는다고 했지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한 적은 없는데. 그럼에도 밥을 먹지 않는 내 모습은 다소 특이해 보인 듯했다. 그런 특이한 물음까지 받아야 했으니까.
이런 대화까지 나누며 대롱대롱 링거는 이 주 만에 끝이 났다. 의료진의 애처로움에 못 이겨(심지어 배식 오신 분들마저 걱정해서) 유동식을 먹기 시작했고 일반식까지 먹을 수 있었다. 남들만큼 먹진 못해도 입으로 뭘 먹긴 해서 의사는 수액 처방을 멈췄다. 무서운 말과 함께.
일단은, 산다
“계속 안 드시셨다면
코로 영양분을 주입해서라도 살려냈을 거예요.”
시작에서 말했듯 나는 희망적인 스토리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래서 ‘지금은 싹 다 나았습니다!’는 못 하겠다. 여전히 먹기 힘든 때가 있고 음식 대신 링거가 대롱대롱 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나를 배워간다. 이렇게까지 엉망인 존재를 데리고 사는 일에 관하여. 이건 내가 소식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소식을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식’이라도 먹긴 먹는다는 의미고 ‘소식’을 말하면서 이런 나를 양해해 달라고 부탁하는 일이기에.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까. 이렇게라도 ‘살아는’ 있어야 하니까.
이게 낫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 매거진은 주 2~3회 연재 이후 브런치북으로 전환됩니다.
식이장애 이야기 이후 소식에 관련된 이야기 / 소식좌 사회생활 꿀팁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작가소개 : 이수연
남들보다 '덜' 먹는 사람.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더 먹어"였다. 성인이 되어 우울증과 함께 공황장애, 식이장애를 앓았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해서도 "더 드세요"를 가장 많이 들었다. 지금은 식이장애를 극복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소식좌로 살아가고 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등을 썼다.
Insta @suyeon_lee0427